나를 찾아서

술과 나-첫술

색즉시공 2009. 2. 24. 18:01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입학시험을 본 뒤에 맞이한 설날 저녁에 처음으로 취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시골에서 국민학교 5학년을 마치고 대전으로 유학을 오던 때 나와는 아예 말도 안하고 붙으면 대부분 싸움을 하던 친구가 있었다. 물론 나는 늘 맞는 편이었지만(그녀석은 덩치도 나보다 컸고, 잘 살아서 미들급과 플라이급이 싸우는 격이었음) 그래도 고집으로 버텼다.

대전으로 유학을 나온 후로는 그 친구를 만날 일도 없었고, 집에 가도 아는 체를 하지 않고 살았다.

나는 그럭저럭 대학이라는 곳을 들어갔지만, 그 친구는 속칭 3류고등학교(그 당시는 고등학교를 시험봐서 들어갔음)를 나와 대학가는 것은 아예 포기한 상황이라는 것을 다른 친구를 통해 듣기는 했었다.

마침 설날이어서 동갑내기 친구녀석들이 우리집과 맞은 편에 사는 친구집에 모여들었고, 고등학교도 졸업했으니 편하게 술 한잔씩 하게 되었는데 마침 그 친구도 함께 앉게 되었다. 술 마신다는 것을 생각못하고 저녁을 빵빵하게 먹고 갔으니 막걸리가 쉽게 들어갈 리가 없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약간 어색한 분위기가 지나면서 서로 화해를 하라는 친구들의 뜻에 따라 서로 미안하다고 인사를 하고는 큰 대접으로 내리 석잔을 마셨다.

그 때의 상황을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속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순간 바로 확인작업에 들어갔다. 마치 펌프처럼 물만 품어내고 말았으니 방바닥이 말이 아니었다. 그게 막걸리와의 첫인연이었다.

그 후로 대학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막걸리를 마셨지만, 지금 즐겨 마시는 소주는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 당시 소주는 지금보다 훨씬 알콜 함량이 많았기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박정희가 죽고, 서울의 봄이 일장춘몽으로 끝나면서 전두환은 5.18학살을 자행하며 전국의 모든 대학에 휴교령을 내린다.

마땅히 할 일도 없어서 이참에 군대나 가자는 생각으로 시골로 내려갔다.

그 시절 농삿일 말고는 젊은 놈들이 할 일이 없으니 날이면 날마다 술 마실 궁리만 하며 살았다.

한여름 낮에는 동네 정자나무 밑에 모여 막걸리내기 윳놀고, 그러지 않으면 냇가에 나가 물고기라도 몇마리 잡으면 그 핑계로 또 한잔 등등 막걸리는 그 때 원없이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