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서

술과 나 - 네발로 걷다

색즉시공 2009. 2. 26. 12:54

 

    위의 사진에서 오른쪽 끝의 중간쯤에 우리집이 있었다고 보면 된다. 나무사이에 있는 집은 나중에 이사온

    사람이 지은 집이다. 수몰되기전에 찍어 놓은 필름사진인데 지금은 멀리 보이는 산의 중턱으로 도로가

    있다.

 

여름날 저녁을 대충먹고 친구녀석들과 모여 놀다가 늘 하는 것처럼 한잔하러 주막엘 갔다.

주막이라야 동네회관옆에 작은 구멍가게다.

재수좋은 날은 방을 차지할 수 있지만 대개는 밖이거나 부엌에서 먹기 마련이다.

그날도 갔더니 역시나 방은 노땅들이 차지하고 있어 우리는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 김치를 안주로 막걸리를 먹었는데 그날따라 제법 술이 들어가기에 네놈이서 한통(한 말)을 비우고 더 마셨다.

당시에 내가 살던 집은 동네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걸어가려면 조심을 해야했다.

밭과 논 사이에 길이 있는데 경사진 곳이라서 길 밑으로는 약 2미터 정도의 낭떨어지같은 경사가 있기에 여차하면 미끄러질 수밖에 없는 곳이다. 약 100여미터를 걸어야 하는데 술도 제법 마셔서 비틀거리며 걸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북북 기어서 갈 수밖에...

내가 생각해도 웃기는 상황이지만 그 때는 떨어지지 않으려는 생각뿐이었다.

진짜 술꾼은 청탁불문, 이족입장 사족퇴장이라 했던가?

결국 나는 두 발로 들어가 네 발로 나온 거였다.

도시에서는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지만 촌놈들이 사는 세상에는 종종 있는 일이다.

그래도 그 시절이 그립다.

돈이 없었어도, 새마을 담배를 피웠어도 어른들 몰래 쭈그리고 앉아 마시던 막걸리와 담배맛은 잊을 수가 없다.

그 시절 함께 했던 친구들 중 어떤 녀석들은 이미 저세상으로 갔고, 아직까지 살아남은 놈들은 소식을 잘 모른다.

바탕화면에 있는 그림이 수몰되기 전의 동네모습이다.

물좋고, 산좋은 동네였지만 사람만큼은 좋지 않았던 고향이기에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별로 없다.

그래도 가끔은 고향이 그립고, 어머니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