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에 거품 무는 아저씨에게[펌]
아이고 아직도 귀가 얼얼하네. 아저씨 저는 MBC 직원도 아니고, PD수첩에 관여하기는커녕 그 라이벌 프로그램 연출자라고요. 왜 나한테 소리를 지르세요 지르기는...... 그래요 나도 PD는 PD니까 초록은 동색이라고 비슷한 부류에다가 퍼붓고 싶은 심정은 알겠는데 그럼 나도 같은 PD입장에서 답을 드릴테니까 좀 조근조근 들어 보세요.
PD수첩 때문에 촛불시위가 일어났다고 비분강개하셨지요. 하기사 며칠 전 총리라는 인간도 그런 말을 했다고 합디다. “PD수첩은 다우너(앉은뱅이) 소를 BSE에 걸린 소라고 왜곡하는 등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지 않아 100만 명 이상이 시위를 벌이는 등 국민과 사회를 불안하게 했다" 고 말이죠.
프로그램 하나가 나라를 뒤흔들고 연 수백만 인파가 거리를 뒤덮게 하다니 그런 대단한 프로그램 만든 PD 입장에선 당장 보신각 종 머리로 들이받아 죽어도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마는 총리나 아저씨나 PD수첩을 너무 과대평가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문제의 프로그램이 나간 날만 해도 시청률 우리한테 밟혔다고요.
아저씨도 그 프로그램을 보셨다고 했지요. 아저씨는 왜 그 교묘하고 악의적인 왜곡에 홀딱 넘어가서 종이컵에 양초 꽂고 미친소 못먹겠다고 난리치지 않으셨어요? 아저씨는 똑똑하고 신중해서 속지 않으신 거고 수십만 촛불시위대는 다 멍청하고 띨띨해서 거짓 선동에 놀아난 거예요? 한 총리가 정녕 자기 나라 국민 100만 명을 꼭둑각시춤을 추고 자빠진 등신 취급하는 것처럼? 어린 백성이 아는 것 없어 텔레비젼 하나 보고 미쳐 돌아가나니?
PD는 면책특권 있냐? 왜 소환하는데 안가냐? 하면요......
저도 그 프로그램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보지는 않아요. 실수도 있었고 오버한 구석도 있어요. 아마 내 후배가 만든 프로그램이었다면 군밤 한 대 쥐어박으면서 조그셔틀 돌리면서 구시렁구시렁거렸을 겁니다. 그런데 CP나 본부장이 아니라, 하다못해 우리가 별로 불려가기 싫어하는 방송위원회나 언론중재위원회가 아니라 검찰이나 경찰에서 내 후배를 보고 싶어한다면 이건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가 돼요.
PD수첩 PD가 한우협회로부터 돈 받고 취재에 나섰나요? 어디 한우 아가씨라도 성상납 받았나요? 미국 목장주들에게 "이거 방송 안 낼 테니 돈 좀 내놔"라고 으르대기라도 했나요? 아니지요.
검찰은 지금 프로그램의 내용과 의도에 칼을 들이대고 있어요. 방송 내용에 문제가 있는 경우 해당자의 반론을 접수하고 양쪽 주장의 옳고 그름을 가늠하여 방송사에게 시정을 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막강 언론중재위원회나 대통령의 '멘토'가 수장으로 있는 방송통신위원회는 핫바지 저고리입은 허수아비인가요? 왜 할 일 많은 검찰이 PD와 작가를 면담하자는 거지요? 아니할말로 검찰이 프로그램에 대해 뭘 안다고. 이미 몇 개월 동안 수사했던 검사가 '혐의없음'을 주장하다가 옷을 벗은 마당에 이미 짜맞춰진 수사, 나와있는 결론에 부응하기 위한 소환은 물리쳐 주는 것이 공화국 시민의 도리라고 생각되는데요.
아하... 정운천 장관 이하 공직자들의 명예를 훼손했고 그들에게 정식 고발당했다고요?
나도 자주 공무원들하고 마주쳐요. 그리고 그들의 직무 유기나 행정적 오류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방송을 곧잘 하지요. 몇 년이 흘러도 가슴에 남아 있는 일이지만 내가 만든 프로그램 때문에 공무원 인생이 거의 파괴당하다시피 하고, 수십만 네티즌에게 악마가 되어 조리돌림을 당한 분도 계세요. 그분의 명예? 훼손된 정도가 아니라 멸실되었고 땅에 파묻혔습니다.
개인적으로야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죄의식은 없어요. 꿈에 나올 정도로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부끄러운 구석도 없습니다. 그분들의 명예가 감당해야 할 몫 이상으로 손상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그분들의 명예를 고려하여 사실을 적당히 무마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그러라고 우리가 월급받는 거니까.
헌데 해당 공무원의 명예훼손을 자행한 현행범으로 압수 수색을 받고 내 처갓집(나는 결혼을 했으니)까지 샅샅이 집뒤짐을 당하는 압박이 현실적으로 상존한다면, 내가 그렇게 당당할 수 있을까요. 과연 내가 양심의 자유에 따라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커트 하나 인터뷰 하나마다 자기검열의 칼을 내리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요?
더구나 제가 취재한 공무원은 말단 중의 말단이고 장관은 공무원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서 노니는 사람입니다. 언론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명예는 오히려 전자의 것이지 후자의 소유가 아니지요. 책임이 큰 공직자일수록 언론의 감시와 고발에 노출되어야 마땅하며 더욱 예리한 비판의 칼날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정말로 보호받아야 할 것은 장관의 명예가 아니라 그 어떤 압력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지적하고 캐내고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입니다. 헌법에 보장된.
너 말 잘했다. PD수첩이 거짓말을 한 건 사실 아니냐?
그렇군요. (이거 누가 자주 쓰는 말버릇인데 ㅋ) 거짓말이라기보다는 PD수첩에 대한 기소불가 의견을 개진한 후 정든 직장을 떠나야 했던 임수빈 검사의 표현대로 "일부 오역과 과장"이 맞지요. 기립불능소를 광우병에 걸린 소로 표현하거나 아레사 빈슨의 죽음의 원인을 광우병으로 자막표기했다거나 하는 등등이 일단 핵심이지요? 참. 휴메인 소사어이어티는 동물보호단체이고 그들은 기립불능 소를 억지로 일으켜 세운 건 동물학대를 고발한 것인데 광우병 의심소를 고발하는 투로 몰아갔다는 씩씩거림도 있더군요.
그런데요....... 정말로 PD수첩 PD 들이 약혼자 집까지 들쑤시고 탁탁 털어대서 잡아 마땅할 나쁜 놈이 되려면요. 거기 나오는 기립불능소들이 광우병의 가능성이 '전혀' 없어야 합니다. 즉 기립불능소들을 광우병 걸린 소라고 한 건 분명히 과장이 맞아요. 그런데 그 불쌍한 소들이 광우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보장 또한 아무도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절대로 그 소는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한 소인데 PD수첩이 그렇게 몰아갔다면 과장이 아닌 허위 방송이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겠지요. 그걸 누가 증명하나요? 정운천 전 장관이 그걸 보증할 수 있답니까?
광우병의 주요한 증상 중의 하나인 기립불능을 보이는 소들에게 물을 뿌리고 기계로 찍어대서 억지로 일으키는 모습이 농장주의 새디스트적 경향에 따른 동물학대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광우병일지도 모르는) 기립불능 소를 억지로 일어서게 하여 고기로 팔아먹는데 이상이 없도록 하려는 욕심의 소산일 수도 있는 겁니다.
저 불쌍한 소들이 당했던 잔인한 행동의 이유가 돈에 대한 욕심과 동물에 대한 가학적 취미 두 가지로 갈라진다고 할 때, 그를 고발한 단체가 '동물보호'를 하는 단체라는 이유로 후자에 방점을 찍어야 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나요? '휴메인 소사이어티'가 동물 보호 단체라면 소들의 목숨을 대책없이 앗아가고 더불어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광우병에는 관심이 없을 수 있겠나요? 너무 세상을 단순하게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다 우리나라 대통령처럼 돼요.
커피 수천 잔을 먹어야 성인 한 명을 겨우(?!) 죽이는 멜라민에도 대통령이 득달같이 나서서 "오늘밤 누가 그걸 먹으면 어쩌냐?"고 불호령을 내릴만큼 국민 건강에 민감한 대한민국에서, 수입되기만 하면 식당에서 대놓고 팔리고 급식 재료로 무더기로 사용될 미국 쇠고기에 대해서 그 정도의 주의를 촉구할 권리가 우리 언론에는 없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혹시 제가 조선인민공화국 인민으로 신분이 바뀌었나요? 이건 김정일 정권 하에서나 가능한 일일 거 같은데.
아레사 빈슨의 사인과 관련해서 어머니의 인터뷰의 내용이 조작되었다...... 인터뷰 내용을 열 두 번도 더 듣고, 토익 450에 빛나는 리스닝 실력까지 쥐어짜서 들어 본 결과 PD수첩의 자막이 그렇게 정확한 번역은 아니라는 결론을 저도 내렸어요. 그러나 인터뷰에는 맥락이라는 것이 있어요. 인터뷰는 며칠을 두고 진행되지만 내용은 몇 분 나갈 뿐입니다. 그 취사 선택은 PD가 하고 PD는 취재 대상자의 진의를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그 말의 흐름과 맥락을 시청자들이 이해하도록 돕는 의무를 가집니다.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가 딸의 사인을 언급한 부분에서 그녀의 말과 자막이 다른 것은 명백한 실수입니다. 그러나 그 대목을 제외한 인터뷰 전체에서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가 어떤 말을 했는지, 무슨 맥락을 가지고 이야기했는지도 중요합니다.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가 CJD와 vCJD의 차이를 그리 명쾌하게 인식하고 정확하게 구분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에요. 자막의 정확한 번역도 중요하지만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걸렸을 수 있는"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걸렸던"이라고 자막에 띄운 것은 오역이 맞다고 저도 판단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인터뷰 대상자와 교감을 나눈 PD로서는 오히려 그 오역이 어머니의 뜻에 더 부합한다고 여길 수도 있어요. 이를테면 우리나라 시사 프로그램에서 어떤 피해자의 어머니가 "경찰이 죽였을 거 같아요. 분명히"라는 인터뷰를 했다고 쳐요. 그럼 맥락상 어머니는 경찰이 자신의 아이를 죽였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파악해도 무방합니다. 이 부분을 영어로 번역할 때 "...였을 거 같아요" 부분을 빼먹고, 즉 I guess나 I think를 쓰지 않았다고 해서 졸지에 담당 PD가 지하철역에서 형사들한테 수갑 채여 가고, 약혼자 집뒤집을 감수해야 한다면 이걸 언론의 자유를 헌법에 보장하고 있는 나라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취재 원본을 달라잖아 왜 안 줘?
취재 원본 즉 취재의 전말을 몽땅 공개하라는 얘기는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정도가 아니라 그 목에 밧줄을 걸겠다는 겁니다. 취재원을 공개하라는 법원의 명령이 있더라도 그를 거부하고 차라리 감옥살이를 선택하는 언론인들의 얘기 들으셨지요? 취재 원본 안에는 취재에 도움을 준 사람들, 비밀리에 만난 사람들, 차마 나서지 못하면서도 양심상 입을 열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널려 있고, 취재 도중에 일어났던 험난한 일들이나 비밀스런 경로들도 부지기수입니다.
언젠가 제게도 경찰의 연락이 온 적이 있습니다. 방송된 아이템의 어떤 가해자가 익명의 제보자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냈고 그 수사를 위해 제게 협조를 요청해 온 거죠. 원본 테잎을 달라고 요청하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현재 보관하고 있지도 않지만 보관 중이더라도 절대 드리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고발당할 수도 있다고 했고 저는 답했습니다. "그 제보자 대신에 제가 고발당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에게 소송을 걸라고 하세요."
그건 제보자에 대한 언론인의 기본적인 의무이고, 최소한의 양식입니다.
인터뷰가 왜곡되었다면 그를 증명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해결책은 취재원본을 내놓으라는 으름장이 아니라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에게 전화 한 통화를 거는 것입니다. "PD수첩이 당신의 말을 이렇게 얘기했는데 당신의 뜻에 부합하느냐?" 요 한 마디만 물어 보면 돼요.
영어 몰입 교육의 부재 때문에 영어에 능통한 검사가 계시지 않다면 나라도 동남아 잉글리시 실력 동원해서 물어 봐 주겠습니다. 국제전화료도 내가 부담하도록 하지요. 만약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가 PD수첩의 방송 내용을 깡그리 부정한다면 그것은 훌륭한 증거 능력을 가진 진술로서 PD수첩의 허위사실 유포를 완벽하게 입증하게 될 겁니다. 그런데 왜 이 쉬운 일을 하지 않고 취재 원본을 가지고 판단하겠다며 결혼 몇 달 앞둔 PD의 약혼자 집까지 뒤지는 거지요? 워낙 어려운 고시공부들만 해 놔서 십리 길도 천리 길로 돌아가는 지혜를 터득하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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