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사람, 사람들
훔쳐야 살 수 있는 사람들
황해도 연백벌(주. 황해남도 연안군, 배천군, 청단군에 걸쳐있는 평야 지대)의 농장원들은 가을 수확철이 되면 이중으로 바빠진다. 수확하는 일로 바쁜 것은 물론이고, 시시때때로 틈을 봐서 농장의 곡물을 몰래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빼돌린 곡물은 이듬해 보릿고개를 넘는데 대단히 중요한 식량이 된다. 벼 가마로 대략 9-10마대(약 300kg) 가량 훔친다고 해도 이듬해 보리가 나올 때까지 먹고 살기가 힘들다.
작년 가을 수확기에는 그렇게 빼돌려 비축한 양이 턱없이 부족해 올해 상반기까지 농장원들의 식량곤란이 심각했다. 추수기간 동안 비가 내리는 날이 많으면 많을수록 빼돌릴 수 있는 여지가 많다. 그런데 전년도의 경우 비가 내리는 날이 적어 탈곡 기간이 짧았다.
2003년도에는 탈곡을 12월 말까지 했는데, 작년에는 11월 중순에 끝이 났다. 이러다보니 벼를 빼돌리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 해 겨울부터 굶주리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심지어 죽는 사람들도 생겼다. 연안군 라진포리에서는 일가족 3명이 사흘 동안 연달아 굶어 죽기도 했다.
용케 곡물을 빼돌린 사람들도 보관하는 일이 쉽지 않다. 리 보안서, 군 보안서, 리 규찰대 등에서 보안원들과 규찰대원들이 나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각 집의 곡물량을 조사한다. 쌀, 콩, 감자, 옥수수 등이 얼마씩 있는지 조사하고 국가에 바쳐야 하는 양을 회수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신고 이외의 비축량을 발견하면 무조건 회수한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땅을 파서 쌀을 묻고 그 위에 마늘을 심어둔다. 마치 마늘밭인양 위장을 하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돼지우리 밑바닥에 묻어두기도 하고, 재를 버리는 곳에 묻은 뒤 재로 덮어놓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은 비닐 박막으로 싸서 묻은 뒤 위에 판자를 대놓기도 한다.
갖가지 묘안을 짜서 저장을 해두지만 단속이 나오면 적발되는 경우가 많다. 조사원들도 대충 어디에 묻어놓는지 파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바닥을 막대로 두드려가면서 손쉽게 찾아내는 편이다.
텃세부리는 연안군 꽃제비들
황해남도 연안군, 배천군, 청단군 등의 꽃제비들은 주로 연안군 시장에 모여든다. 해주에서 온 꽃제비들도 간혹 눈에 띈다. 다른 고장에서는 규찰대들의 단속이 심한 편인데 그나마 연안군이 나은 편이라 이 쪽으로 모여드는 인원이 많다. 여러 고장에서 오다보니 각자 출신지역별로 모인다. 연안파, 봉천파, 배천파, 청단파 이런 식으로 세를 형성한다. 이 때 연안군의 꽃제비들이 다른 지역의 꽃제비들을 견제하거나 해당 구역에서 텃세를 부린다.
꽃제비 무리에는 두령과 부두령이 있는데 이들은 필요에 따라 휘하 꽃제비들을 소집해서 함께 행동하기도 한다. 가령 물건을 덮칠 때 조직적으로 움직이거나 자기네들 안에서 물건이나 돈을 도둑맞는 등의 문제가 생기면 긴급소집을 해서 범인을 색출하기도 한다.
배천군 방현리 출신의 한 아이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꽃제비가 되었다. 평안남도 덕천에 살다가 어머니의 재가로 황해남도 배천군으로 왔는데, 어머니와 자기 형제 다섯 명에 새 아버지 식구 다섯 명이 모여 열 명의 가족이 되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를 따라온 4형제가 뿔뿔이 흩어지게 되면서 본인도 집을 나와 꽃제비가 되었다. 이 아이는 시장에서 옷이나 음식을 훔치거나 밭에서 감자를 몰래 캐다가 팔면서 살고 있다.
한편 신의주의 꽃제비들은 옷차림이 깔끔한 편이다. 여기 꽃제비들도 보통 8-9명이 무리지어 다닌다. 신의주 꽃제비들의 텃세도 세서 외부에서 들어온 꽃제비들이 상대적으로 기를 펴지 못한다.
한국 경제와 북한 군사, 합치면 강성대국
비교적 외부 정보를 많이 접하는 함경북도 새별군의 일부 주민들은 통일이 되면 강대국이 될 거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한국은 경제가 발전되었고 북한은 군대가 강하니까 하나가 되면 당연히 강대국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옛날 강성했던 고구려의 영광을 재현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래서 차라리 한국 주도로 흡수 통일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흡수통일이든 무력통일이든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자신들도 잘 살게 되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 중의 하나이고, 한국에서 비료와 쌀을 지원해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북한이 잘 살려면 미국과도 관계 개선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이 잘 살게 된 것은 미국의 지원 덕분이 아니었느냐며 북한도 처음부터 미국과 관계를 가졌어야 했다고 말한다. 일본이나 미국이나 과거에는 ‘철천지 원수’로 알았지만 이제는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져서 어떤 나라이든 자신들이 잘 살수 있도록 지원해주면 상관없다고 여긴다.
그런데 중국에 대해서는 한국이 통일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북한이 미국과 일본, 한국 등과 직접 대치하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방파제 역할을 해왔는데 통일이 되면 경제보다 군사력 증강에 더 신경을 써야 하므로 중국 입장에서는 달가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 역사를 봐도 고구려가 강성했을 때 중국이 고전을 면치 못했기 때문에 ‘통일 한국’에 대해서 경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