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세상만들기

이런 워리새끼를...

색즉시공 2006. 3. 23. 13:33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영농기에 들어서 정신없이 바쁜 요즘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망발'이 밤잠을 줄이며 이 편지를 쓰게 하는군요.

거두절미하고 당신이 <신동아> 인터뷰를 통해 밝힌 망발은 고 전용철·홍덕표 농민을 두 번 죽이고 있습니다. 올해 농사도 지을 수 없는 두 분이 저 세상에서 편히 잠들기를 바라는 이 때, 당신의 망발은 정말 소가 웃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음을 추스리며 생계를 위해, 이 나라 국민의 식량을 책임지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농사 준비를 시작하려는 농민들. 당신은 그들의 시커멓게 멍든 가슴을 다시 한번 헤집었습니다.

숨진 농민이 '건강이 나쁜 사람'과 '70대 노인'이라니요? 당연히 죽을 사람이 필연적으로 사망했다니요? 경찰 수장인 당신이 물러난 게 농민들 목숨 잃은 것보다 더 억울한 일이었습니까?

두 농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그 날의 모습을 보지 않았습니까? TV와 인터넷 동영상 등을 통해 온 나라에 알려진 사실을 왜 손바닥으로 가리고 곡해하려 하십니까?

5월 광주같았던 그 날, 억울하십니까?

여의도 농민집회가 있던 그 날, 11월 15일을 벌써 잊으신 것은 아니겠죠? 그 날이 80년 5월 광주의 재현극이라고 할 만큼 처절했다는 건 저와 우리 농민들만의 생각이었던가요?

허 전 청장님. 어찌 보면 당신은 80년 5월 광주양민학살의 주범인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끝까지 직무를 다한 전례에 견줘볼 때 임기제 청장을 마치는 것이 당연지사였을까요? 지금이 5공화국이라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억울할 수 있겠습니다. 시대를 잘못 태어났으니까요.

그러나 5·6공화국의 두 주역은 감옥을 거쳐갔고 우리 역사 발전을 지체시킨 주범으로 낙인찍히면서 서훈마저 박탈됐습니다. 그러고 보면 당신은 이미 물러나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절차적 민주주의와 국민의식이 이만큼이나 된 시점에도 당신은 경찰 조직에서도 승진하기 어려운 5공 인물일 뿐입니다.

당신은 원래 사퇴만으로 끝나서는 안 되었습니다. 지휘 책임과 농민에게 가해진 폭력행위를 낱낱이 가려내는 게 순서였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정치권의 비호 속에 자진사퇴 형식을 취해 예외를 인정받았습니다. 그야말로 농민과 국민의 분노를 정치권이 받아들인 데 따른 것뿐입니다.

농민들과 국민의 바람은 '농업의 근본적 회생대책'이었지만, 늦게나마 경찰폭력에 의한 사망을 인정해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인정' 또한 진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담겨 있지 않은 속임수였던 셈입니다.

슬픔이 채 가시지도 않은 유족에게 당신은 또 눈물이 마르지 않게 하는군요. TV를 통해 당신의 발언이 자막으로 떠오를 때 저는 냅다 베개를 던졌습니다. 다른 던질 것이 있었더라면 TV는 부서버렸을 것입니다.

임기제 청장, 농민 사망에도 통용될까요?

당신은 '임기제 청장'을 지키지 못한 것을 가장 큰 수치로 여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임기제 청장의 본질은 정치권으로부터의 고유한 경찰업무 독립이라는 경찰조직의 자주성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무고한 농민을 숨지게 한 주범에게도 통용이 될까요? 구속수사가 원칙이지요.

당신은 2005년 1월 경찰청장 인사청문회 때 부동산 투기, 주식투기 의혹에 대해 집중 추궁받았습니다. 병적기록표를 보면 고도근시와 색맹으로 군보충역판정을 받고 대학에 다니면서 동시에 군복무를 해 병역기피 의혹도 샀습니다. 사실 그 시력이라면 경찰간부 후보생에서 탈락해야 하는 것 아니었나요?

허준영 전 청장님.

유족과 농민과 국민을 기만하지 마십시오. 농민들은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서 처절한 심정으로 농민집회에 참석했고 당신은 농민을 상대로 '전쟁'을 치른 지휘관입니다.

더 이상 우리 눈에 피눈물이 마를 수 있도록 제발 가만히만 계셔 주십시오. 정치판에 뛰어들기 위한 정지작업으로 숨진 두 농민을 이용하지 마십시오. 청장 퇴진의 불명예를 더 이상 호도하지 마십시오. 당신 지역 주민들도 이제는 예전의 주민이 아닐 것입니다. 두 농민의 죽음을 더 이상 욕되게 하지 마십시오.

제발… 제발… 가만히만, 가만히만 있어 주십시오!

2006. 3. 22.
고 전용철 열사와 함께 농사짓던 보령농민 김영석

 

[오마이뉴스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