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한미FTA반대
[한미FTA]우리는 멕시코로 갑니다-대통령께 드리는 편지
색즉시공
2006. 5. 10. 17:16
우리는 멕시코로 갑니다 -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
정태인(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안녕하십니까? 정태인입니다. 만나 뵙고 말씀 드리는 게 예의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여의치 않을 것이란 지레 짐작으로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작년 2월 1일 아침을 기억하지 못하시겠지요? 저도 잊어버린 일이었다가 검찰의 조사를 받으면서 그 날을 되새겼으니 하는 말입니다. 아침 공기가 여전히 쌀쌀했다는 기억이 남아있는데, 사저에 들어서자 권양숙여사께서 어린 아이와 즐거움만 가득해 보이는 놀이를 하고 계셨습니다.
잔디밭을 가로질러 누구 아이인지 여쭸고 친손주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대통령님. 한미 FTA는 남은 임기를 훨씬 넘어 아이들 세대를 거쳐 손주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어마어마한 사건입니다. 대통령께서 책임질래도 책임질 수 없는 그런 일입니다.
물론 대통령께서도 너무나 잘 아시는 얘깁니다. 제가 그만 두겠다고 말씀드리다 결국 설득을 당해 국민경제비서관으로 가겠노라 항복한, 2월 1일 당시만 해도 대통령께서는 그러한 문제를 절실하게 인식하고 계셨습니다. 그 날 대통령께서는 네가지 부탁을 하셨고 그 중 하나가 한일 FTA에 관한 연구였습니다.
“이걸 그냥 해도 되는지, 걱정이 돼서 잠이 안 올 지경”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많은 연구가 있지만 믿지 못하겠다, 정비서관이 한번 더 꼼꼼히 챙겨보라”고 지시하셨죠. 그 때 저는 “한국의 산업발전전략, 포괄적으로 경제발전전략을 먼저 정립하고 한일 FTA가 그 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거기 맞춰서 양허안도 마련하고 협상도 해야한다”고 말씀드렸고 그 방향에서 8개 기관, 연인원으로 100여명 쯤 동원해서 방법론부터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사건으로 그만 둔 후에도 연구는 계속 됐고 10월말 경 완성됐습니다. 꼼꼼히 하려 한다면 연구만 적어도 8-9개월이 걸린다는 얘깁니다. 이미 100여권에 이르는 연구가 있는 상태에서도 그랬습니다.
한미 FTA 연구가 어느 정도인지는 보고를 받으셨겠지요. 달랑 세편, 그것도 현실성이 의심스러운 것들입니다. 한미 FTA로 7.75%의 실질 GDP가 올라간다는 전망은 경제학자가 아닌 장삼이사가 보더라도 어불성설입니다(또 하나의 보고서는 중력모형을 사용한 것인데 한미 FTA를 시행하면 130억 달러 정도 무역수지가 개선된다는, 역시 믿을 수 없는 비현실적 결론을 내고 있습니다). 한미 FTA라는 외부쇼크를 맞은 후, 우여곡절을 겪어 자본과 노동이 완전고용이 되는 균형상태가 오면 그 이후에는 (다른 외적 변수가 없는 한) 우리의 실제 GDP 더하기 7.75% 해서 약 11-12%의 성장을 매년 계속 한다는 게 도대체 말이나 됩니까?
물론 CGE모델(계산가능일반균형모델)의 절대수치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런데도 경제를 잘 안다는 부총리, 그리고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앞으로 우리 경제가 11-12%의 성장을 하게 된다는 허황된 말로 국민을 기만하고 있습니다. 다른 정책연구원, 그리고 부처 모두 이런 낙관적 보고만 올린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끔찍합니다. 대통령께서 아무리 신중한 판단을 한다고 해도 이미 판단 자료 자체가 편향돼 있는 만큼 대통령께서는 볼테르의 팡글로스 박사(편집자 주: 볼테르의 깡디드에 나오는 인물로 근거없는 낙관론자. 경제학에서 팡글로스 밸류라고 하면 그것은 가장 낙관적으로 부풀려진 수치를 의미함)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읍참마속이든 일벌백계든 해서 그릇된 정보가 올라오지 못하도록 차단해야 합니다.
한일 FTA로 인해서 타격을 받을 업종이 기계-부품 산업이라는 건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라 참여정부에서도 여러번 대책을 보고받으셨습니다. 물론 한일 FTA 보고서에서도 또 강조하고 있지요. 그럼 한미 FTA로 타격을 받을 산업은 어떤 분야일까요? 지금 대통령께서 딱 떠오르는 게 없다면 보고를 받지 않으신 것이고 제가 알기로는 그런 보고는 없었습니다. 그 업종은 화학-의료, 특히 제약일 겁니다. 모르긴 몰라도 통계상으로도 이 업종의 민감도는 엄청나게 높이 나왔을 겁니다. 어떤 대책을 세우셨나요? 산자부나 산업연구원의 보고를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서비스업의 생산성이 향상된다는 건 또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서 그렇게 된다는 건지 보고를 받으셨나요? 현재 보도된 근거로는 대통령께서 “국민을 믿는다”, 경제보좌관이 “교포를 보라. 서비스업에서 성공했다”는 말 밖에는 없습니다. 사실상 근거가 없는 얘기입니다. 대통령께서도 잘 아시는 우리나라 최고의 금융전문가 중 한 분은 금융에서 크로스보더 등이 허용되면 신상품 개발 등 모든 기획기능은 미국의 금융계가 하고 우리 금융권은 지점보다도 못한 연락사무소 역할을 하면서 수수료나 챙기는 신세로 전락할 것이라고 걱정합니다(실제로 멕시코의 경우 예금의 80%를 미국계 은행에서 챙기고 있습니다). 그나마 고용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얘기죠. 이미 10여년 개방을 해서 면역력이 생겼다는 금융도 그런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외국인직접투자(FDI)가 획기적으로 증가해서 생산성에 기여하는 경로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정부 문서들도 다른 나라의 예를 들어 이 경로를 강조하고 있지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멕시코가 아닙니다. 미국이 자동차등 초국적기업이 수출경쟁력 강화를 위해 멕시코에 이른바 ‘마킬라도라’를 우후죽순으로 만들었고 유럽도 대미수출을 노려 이 대열에 참가한 것이 사실입니다(그 마저도 중국산에 밀려 폭스 대통령마저 이미 ‘실패한 정책’으로 공언했습니다만).
이런 현상이 일어나려면 우리가 이미 중국과 FTA를 맺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중국은 2003년 8월 로드맵, 그리고 2004년 초의 수정판에서도 미국과 함께 맨 마지막에 FTA를 맺을 나라로 분류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새 미국은 10개월 이내에 FTA를 맺어야 할 긴급 대상국으로 돌변하고 중국은 여전히 맨 마지막에 남았으니 단기간 내에 우리나라의 FDI가 급증할 이유는 거의 없습니다. 물론 미국식으로 정리해고를 훨씬 더 쉽게 하고 실질임금의 상승을 억제하거나 심지어 내린다면 어느 정도 늘어날 가능성은 있겠지만(NAFTA 10년의 결과, 멕시코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0.1% 감소했습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국민의 복지를 줄이는 경쟁력 향상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책일까요? 대외의존도가 높으니까 한미 FTA를 맺어 결과적으로 더욱 더 대외의존도를 높이자는 게 과연 경제(학)적인 논리일까요?
대통령께서도, 유시민 장관도, 또 김종훈 대표도 의료시장 및 교육시장 개방은 해도 우리 의료체계나 공교육체계는 건드리지 않겠다, 특히 강제지정제 폐지, 초중등학교 개방은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믿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미국의 의료계나 교육계에서 그런 요구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아직 시장조사도 하지 않은 상태라고 봐야겠죠. 그러나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재경부가 교육 및 의료기관의 영리법인화를 줄기차게 외쳐온지 이미 10년 가까이 되고, 외국인 학교나 병원을 끌어들이려고 갖은 특혜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외교부도, 대외경제정책연구원도 공식 문건에서 싱가포르 사례를 들고 있지요. 심지어 대통령께서 참여정부의 보고서 중 최고라고 상찬한 국민경제자문회의의 1월 보고서에도 ‘강제지정제 재고’를 주장하고 있습니다(그게 어떻게 만들어진 보고서인지는 아시는지요?)
뿐만 아니라 대통령께서는 이런 주장이 한나라당의 신앙에 가까운 전매특허라는 것도 잘 아시고 계십니다. 한미 FTA의 효과는 참여정부가 아닌, 다음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대통령이나 복지부 장관이 임기 중에 공공성의 훼손을 힘겹게 막아낸다 해도, 다음 정권을 누가 잡든 관료, 그리고 재벌, 그리고 조중동 등 보수언론의 삼각동맹체제는 이제 한미 FTA의 규정을 국제적인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제 갈 길로 갈 겁니다. 한미 FTA에 포함될 미국 BIT2004는 투자에 관한 모든 규제를 무력화시킬 조항을 담고 있습니다.
퇴임한 대통령이 그걸 어떻게 막겠습니까. 대통령께서는 둑에 손가락 하나 정도의 구멍을 내신 거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결국 차기 정권, 또는 차차기 정권에서는 둑이 무너지듯 공공성은 여지없이 훼손될 겁니다.
인수위 시절에 당시 대통령당선자의 허락을 받아 중지시킨 네트워크형 공기업의 민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위의 삼각동맹은 줄기차게 한전 등의 민영화를 주장해 왔습니다. 이제 한미 FTA는 그 길을 활짝 열어 놓을 겁니다. 불과 2년 반 만에 소신이 변한 건가요? 설마 “내 임기동안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시지는 않겠지요?
맨 앞에 손주 얘기를 했습니다만 그 손주가 돈이 없어 감기 정도는 그냥 앓아 버리고 말기 바라십니까? 제 과장이 아닙니다.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전 노동부장관인 로버트 라이시의 “미래에 대한 약속”을 읽어 보십시오).
한미 FTA는 국경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는 게 아닙니다. 우리 국내로 깊숙이 들어와서 온 국민의 생활 자체를 완전히 뒤바꿔 버리는 정책입니다. 미국식 경제로 우리 사회를 개조하는 일입니다. 기억하십니까? 후보의 후보 시절에 두세명 밖에 안되는 경제참모들이 독일의 사례나 스웨덴의 사례를 정책에 반영하려고 애를 썼고, 대통령께서도 최근까지 유럽형 경제체제, 나아가서 EU형 공동체를 만들려고 노력해 왔다는 사실을. 작년만 해도 제가 동북아시대위원회에서 EU형 공동체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한 보고서를 만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도대체 달러라는 기축통화도 없이, 세계 최강의 군사력도 없이, 하바드와 같은 세계의 인재 흡수 기관도 없이 어떻게 미국형 시스템이 우리나라에 도입되고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경제학에서는 경제제도의 수출가능성문제(exportability problem)라고 해서 심각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김현종 본부장은 낡은 일본형 시스템을 버리고 미국형으로 개조하는 게 우리의 살길이라고 아주 노골적으로 썼더군요. 그가 과연 알고나 하는 소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느 유형이 우수한가에 대한 평가는 학자마다 다르고, 또 시대에 따라 달라집니다.
80년대에는 에즈라 포겔의 “JAPAN AS NO 1"이라는 책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미국형 비판과 일본형 예찬이 유행이었죠. 미국이 강요한 플라자 합의를 기점으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됐고 동시에 클린턴 행정부 때의 장기호황으로 현재는 그 평가가 역전됐습니다만 쌍둥이 적자로 대표되는 미국 경제의 취약성은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10년째 단골 메뉴입니다. 물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셉 스티글리츠(당선자 시절 대통령께서 스티글리츠 교수와 의기투합해서 해외자문단 의장으로 삼으려 했던 건 기억하시나요?)나 저명한 일본전문가인 찰머스 존스 버클리대 교수가 미국경제의 취약성을 맹비판하고 최근에도 스티글리츠교수가 한국에 대해 스웨덴형을 참고해야 한다고 충고한 사실은 보고 받지 않으셨겠지요.
앞으로 동북아가 세계경제의 중심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고, 이 지역의 경제모델이 세계의 표준이 됩니다. 결코 이미 한계를 보일 데로 다 보이고 군사력 밖에 의존할 데가 없는붕괴 일로의 미국형 제도는 결코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닙니다. 지금 정부가 하는 일은 난파선에 스스로 올라타는 격입니다.
한미 FTA로 동북아의 꿈도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도 심각하게 고민해 보셨는지요? 물론 중국도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중국위협론이 급작스레 부각되고 “중국은 한국사회의 양극화를 부추기지만 미국은 아니다. 정반대로 미국형으로 개조하는 것이 살 길”이라는 말도 안되는 얘기, 적어도 엄청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얘기를 공공연하게 청와대에서 하고 있는 건 또 어떻게 봐야 할까요? 혹시 한미 FTA가 남북관계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오히려 한미FTA가 전략적 유연성과 함께 중국과 북한의 연계만 강화시킬, 뿐 국민의 정부 이래로 공들인 우리의 노력마저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 것이라는 걱정이 앞섭니다. 한-미-일 삼각동맹이 강화되고 이에 대응해서 북-중-러 삼각관계가 돈독해지면 이런 걱정은 단순히 기우에 그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대통령 말씀대로 우리가 살려면 개혁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적 합의에 의해 국민이 스스로 참여하는 자발적 개혁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이루기 어렵다 하더라도 그러한 개혁만 지속가능합니다. 외부쇼크에 의한 개혁은 결코 아닙니다. 혹여 성공할지라도 그 쓰나미에 휩쓸려 생명마저 잃어버릴 수많은 약자들의 신음소리가 이제는 더 이상 들리지 않으시나요?
원론으로 얘기한다면 양극화는 외적 변화에 대한 사람 또는 집단의 대응능력의 차이에서 생겨납니다. 구조적으로 본다면 금융화를 특징으로 하는 현단계의 세계화, 정보격차, 노동시장 유연화, 그리고 부차적으로 중국 쇼크가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극단으로 몰아 가고 있습니다. 한미 FTA는 그 경향을 극단으로 밀고 가는 마지막 ‘자비의 일격(coup de grace)’입니다. 빨리 맺으면 맺을수록, 미국이 주장하는 골드스탠더드가 되면 될수록 그 타격은 심각해질 겁니다. 우리 경제가, 사회가 안락사하길 바라는 건 아니시겠죠.
조선일보는 제가 대통령의 변화(‘후반기 노무현’이라고 표현하더군요)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비아냥거립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난 3년간 특별하게 세상이 변한 게 없는데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사상, 또는 정책기조가 그리 쉽게 바뀔 수는 없습니다. 편지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대통령의 참모였던 사람으로서 몇가지 건의만 하고 끝내겠습니다.
첫째 낙관적 보고만 올라오게 하는 현재의 분위기를 바꿔야 합니다. 대통령의 신중론 한마디, 그릇된 보고자의 문책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둘째,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동안의 절차에 관한 모든 걸 다 공개해야 합니다. 저는 지난 4월 25일 국회 토론회에서 대외경제위원회 제1차에서 6차까지의 자료와 토론내용, 그리고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CGE 모형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권영길 의원도 공식으로 자료를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정부 참석자들도 이에 대응하여 스스로 공개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습니다만,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도 없습니다. 현재처럼 한미 FTA를 추진한다면 지극히 외람된 말씀이지만 대통령께서는 차기 국회의 청문회에 설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의 문제는 차기 정부에서부터 터져 나올 것이고 당연히 그들은 문제의 뿌리를 현 정부의 협상에서 찾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를 대비해서라도 투명하게 일을 진행해야 합니다.
셋째, 우리의 전략을 밝혀야 합니다. 협상에 필요한 세세한 정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경제 및 사회의 발전방향이 무엇인지, 그래서 어떤 건 하늘이 두쪽나도 지킬 것인지, 어떤 쪽은 포기할 것인지 방향을 알아야 국민도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조업은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습니다만 화학, 의료 등 민감한 산업의 대책도 마련해야 합니다.
넷째, 이미 동북아 위에서 금융전문대학원, 물류전문 대학원, FDI 대학원 등으로 단초를 마련한일이지만 시급하게 서비스업의 고급인력을 키워야 합니다.
다섯째, 중국의 서비스 시장 개방을 대비해서 전략적 차원의 외자유치, 국내 서비스산업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미국기업에 대한 무조건 개방이 능사가 아닙니다. 서비스업 자체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DDA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여섯째, WTO의 규정에 비춰봐도 그렇지만, 한미 FTA가 맺어지면 일반적인 산업정책은 불가능합니다. 유일하게 가능한 것이 클러스터 정책입니다. 지역의 인프라를 형성하는 문제는 WTO에서도 인정하는 바이고 내외자를 차별하지 않고 특혜없이 네트워크 외부성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용한 정책입니다. 현재의 지역균형 차원의 클러스터 조성 정책을 수정해서 그 중 두세개는 내셔널 클러스터를 만들어야 합니다.
일곱 번째 공공성을 훼손할 수 있는 조항은 FTA에 명시해서 미리 못을 박아 놓아야 합니다. 당장 미국이 제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냥 넘어가면 언젠가는 BIT2004의 투자조항에 따라 하나 하나 문제가 될 겁니다. 의료나 교육, 공기업 민영화의 특정 분야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협정 자체에 집어 넣어야 합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지금의 속도는 가능한 한 늦춰야 합니다. 지금 정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해내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세계 최강국과 협상을 하는 겁니다.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바람직하기로는 FTA 협정의 체결 자체를 차기정부의 검토까지 거친 후로 미뤄야 합니다.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반영하는 것이 여러모로 바람직합니다.
대통령께서 이 글을 볼 즈음, 저는 멕시코에 있을 겁니다. 이 편지의 제목을 “멕시코로 갑니다”라고 한 것도 그 때문이죠. 물론 멕시코와 우리는 많이 다릅니다만 미국의 강력한 영향력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특히 공공 영역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직접 눈으로 보려고 합니다. 이제는 보고서를 쓸 수도, 써봤자 전달이 안될 걸 잘 알기에 이 지면에 멕시코 보고서를 공개하려고 합니다. 부디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정태인(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안녕하십니까? 정태인입니다. 만나 뵙고 말씀 드리는 게 예의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여의치 않을 것이란 지레 짐작으로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작년 2월 1일 아침을 기억하지 못하시겠지요? 저도 잊어버린 일이었다가 검찰의 조사를 받으면서 그 날을 되새겼으니 하는 말입니다. 아침 공기가 여전히 쌀쌀했다는 기억이 남아있는데, 사저에 들어서자 권양숙여사께서 어린 아이와 즐거움만 가득해 보이는 놀이를 하고 계셨습니다.
잔디밭을 가로질러 누구 아이인지 여쭸고 친손주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대통령님. 한미 FTA는 남은 임기를 훨씬 넘어 아이들 세대를 거쳐 손주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어마어마한 사건입니다. 대통령께서 책임질래도 책임질 수 없는 그런 일입니다.
물론 대통령께서도 너무나 잘 아시는 얘깁니다. 제가 그만 두겠다고 말씀드리다 결국 설득을 당해 국민경제비서관으로 가겠노라 항복한, 2월 1일 당시만 해도 대통령께서는 그러한 문제를 절실하게 인식하고 계셨습니다. 그 날 대통령께서는 네가지 부탁을 하셨고 그 중 하나가 한일 FTA에 관한 연구였습니다.
“이걸 그냥 해도 되는지, 걱정이 돼서 잠이 안 올 지경”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많은 연구가 있지만 믿지 못하겠다, 정비서관이 한번 더 꼼꼼히 챙겨보라”고 지시하셨죠. 그 때 저는 “한국의 산업발전전략, 포괄적으로 경제발전전략을 먼저 정립하고 한일 FTA가 그 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거기 맞춰서 양허안도 마련하고 협상도 해야한다”고 말씀드렸고 그 방향에서 8개 기관, 연인원으로 100여명 쯤 동원해서 방법론부터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사건으로 그만 둔 후에도 연구는 계속 됐고 10월말 경 완성됐습니다. 꼼꼼히 하려 한다면 연구만 적어도 8-9개월이 걸린다는 얘깁니다. 이미 100여권에 이르는 연구가 있는 상태에서도 그랬습니다.
한미 FTA 연구가 어느 정도인지는 보고를 받으셨겠지요. 달랑 세편, 그것도 현실성이 의심스러운 것들입니다. 한미 FTA로 7.75%의 실질 GDP가 올라간다는 전망은 경제학자가 아닌 장삼이사가 보더라도 어불성설입니다(또 하나의 보고서는 중력모형을 사용한 것인데 한미 FTA를 시행하면 130억 달러 정도 무역수지가 개선된다는, 역시 믿을 수 없는 비현실적 결론을 내고 있습니다). 한미 FTA라는 외부쇼크를 맞은 후, 우여곡절을 겪어 자본과 노동이 완전고용이 되는 균형상태가 오면 그 이후에는 (다른 외적 변수가 없는 한) 우리의 실제 GDP 더하기 7.75% 해서 약 11-12%의 성장을 매년 계속 한다는 게 도대체 말이나 됩니까?
물론 CGE모델(계산가능일반균형모델)의 절대수치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런데도 경제를 잘 안다는 부총리, 그리고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앞으로 우리 경제가 11-12%의 성장을 하게 된다는 허황된 말로 국민을 기만하고 있습니다. 다른 정책연구원, 그리고 부처 모두 이런 낙관적 보고만 올린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끔찍합니다. 대통령께서 아무리 신중한 판단을 한다고 해도 이미 판단 자료 자체가 편향돼 있는 만큼 대통령께서는 볼테르의 팡글로스 박사(편집자 주: 볼테르의 깡디드에 나오는 인물로 근거없는 낙관론자. 경제학에서 팡글로스 밸류라고 하면 그것은 가장 낙관적으로 부풀려진 수치를 의미함)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읍참마속이든 일벌백계든 해서 그릇된 정보가 올라오지 못하도록 차단해야 합니다.
한일 FTA로 인해서 타격을 받을 업종이 기계-부품 산업이라는 건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라 참여정부에서도 여러번 대책을 보고받으셨습니다. 물론 한일 FTA 보고서에서도 또 강조하고 있지요. 그럼 한미 FTA로 타격을 받을 산업은 어떤 분야일까요? 지금 대통령께서 딱 떠오르는 게 없다면 보고를 받지 않으신 것이고 제가 알기로는 그런 보고는 없었습니다. 그 업종은 화학-의료, 특히 제약일 겁니다. 모르긴 몰라도 통계상으로도 이 업종의 민감도는 엄청나게 높이 나왔을 겁니다. 어떤 대책을 세우셨나요? 산자부나 산업연구원의 보고를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서비스업의 생산성이 향상된다는 건 또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서 그렇게 된다는 건지 보고를 받으셨나요? 현재 보도된 근거로는 대통령께서 “국민을 믿는다”, 경제보좌관이 “교포를 보라. 서비스업에서 성공했다”는 말 밖에는 없습니다. 사실상 근거가 없는 얘기입니다. 대통령께서도 잘 아시는 우리나라 최고의 금융전문가 중 한 분은 금융에서 크로스보더 등이 허용되면 신상품 개발 등 모든 기획기능은 미국의 금융계가 하고 우리 금융권은 지점보다도 못한 연락사무소 역할을 하면서 수수료나 챙기는 신세로 전락할 것이라고 걱정합니다(실제로 멕시코의 경우 예금의 80%를 미국계 은행에서 챙기고 있습니다). 그나마 고용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얘기죠. 이미 10여년 개방을 해서 면역력이 생겼다는 금융도 그런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외국인직접투자(FDI)가 획기적으로 증가해서 생산성에 기여하는 경로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정부 문서들도 다른 나라의 예를 들어 이 경로를 강조하고 있지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멕시코가 아닙니다. 미국이 자동차등 초국적기업이 수출경쟁력 강화를 위해 멕시코에 이른바 ‘마킬라도라’를 우후죽순으로 만들었고 유럽도 대미수출을 노려 이 대열에 참가한 것이 사실입니다(그 마저도 중국산에 밀려 폭스 대통령마저 이미 ‘실패한 정책’으로 공언했습니다만).
이런 현상이 일어나려면 우리가 이미 중국과 FTA를 맺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중국은 2003년 8월 로드맵, 그리고 2004년 초의 수정판에서도 미국과 함께 맨 마지막에 FTA를 맺을 나라로 분류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새 미국은 10개월 이내에 FTA를 맺어야 할 긴급 대상국으로 돌변하고 중국은 여전히 맨 마지막에 남았으니 단기간 내에 우리나라의 FDI가 급증할 이유는 거의 없습니다. 물론 미국식으로 정리해고를 훨씬 더 쉽게 하고 실질임금의 상승을 억제하거나 심지어 내린다면 어느 정도 늘어날 가능성은 있겠지만(NAFTA 10년의 결과, 멕시코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0.1% 감소했습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국민의 복지를 줄이는 경쟁력 향상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책일까요? 대외의존도가 높으니까 한미 FTA를 맺어 결과적으로 더욱 더 대외의존도를 높이자는 게 과연 경제(학)적인 논리일까요?
대통령께서도, 유시민 장관도, 또 김종훈 대표도 의료시장 및 교육시장 개방은 해도 우리 의료체계나 공교육체계는 건드리지 않겠다, 특히 강제지정제 폐지, 초중등학교 개방은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믿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미국의 의료계나 교육계에서 그런 요구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아직 시장조사도 하지 않은 상태라고 봐야겠죠. 그러나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재경부가 교육 및 의료기관의 영리법인화를 줄기차게 외쳐온지 이미 10년 가까이 되고, 외국인 학교나 병원을 끌어들이려고 갖은 특혜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외교부도, 대외경제정책연구원도 공식 문건에서 싱가포르 사례를 들고 있지요. 심지어 대통령께서 참여정부의 보고서 중 최고라고 상찬한 국민경제자문회의의 1월 보고서에도 ‘강제지정제 재고’를 주장하고 있습니다(그게 어떻게 만들어진 보고서인지는 아시는지요?)
뿐만 아니라 대통령께서는 이런 주장이 한나라당의 신앙에 가까운 전매특허라는 것도 잘 아시고 계십니다. 한미 FTA의 효과는 참여정부가 아닌, 다음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대통령이나 복지부 장관이 임기 중에 공공성의 훼손을 힘겹게 막아낸다 해도, 다음 정권을 누가 잡든 관료, 그리고 재벌, 그리고 조중동 등 보수언론의 삼각동맹체제는 이제 한미 FTA의 규정을 국제적인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제 갈 길로 갈 겁니다. 한미 FTA에 포함될 미국 BIT2004는 투자에 관한 모든 규제를 무력화시킬 조항을 담고 있습니다.
퇴임한 대통령이 그걸 어떻게 막겠습니까. 대통령께서는 둑에 손가락 하나 정도의 구멍을 내신 거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결국 차기 정권, 또는 차차기 정권에서는 둑이 무너지듯 공공성은 여지없이 훼손될 겁니다.
인수위 시절에 당시 대통령당선자의 허락을 받아 중지시킨 네트워크형 공기업의 민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위의 삼각동맹은 줄기차게 한전 등의 민영화를 주장해 왔습니다. 이제 한미 FTA는 그 길을 활짝 열어 놓을 겁니다. 불과 2년 반 만에 소신이 변한 건가요? 설마 “내 임기동안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시지는 않겠지요?
맨 앞에 손주 얘기를 했습니다만 그 손주가 돈이 없어 감기 정도는 그냥 앓아 버리고 말기 바라십니까? 제 과장이 아닙니다.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전 노동부장관인 로버트 라이시의 “미래에 대한 약속”을 읽어 보십시오).
한미 FTA는 국경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는 게 아닙니다. 우리 국내로 깊숙이 들어와서 온 국민의 생활 자체를 완전히 뒤바꿔 버리는 정책입니다. 미국식 경제로 우리 사회를 개조하는 일입니다. 기억하십니까? 후보의 후보 시절에 두세명 밖에 안되는 경제참모들이 독일의 사례나 스웨덴의 사례를 정책에 반영하려고 애를 썼고, 대통령께서도 최근까지 유럽형 경제체제, 나아가서 EU형 공동체를 만들려고 노력해 왔다는 사실을. 작년만 해도 제가 동북아시대위원회에서 EU형 공동체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한 보고서를 만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도대체 달러라는 기축통화도 없이, 세계 최강의 군사력도 없이, 하바드와 같은 세계의 인재 흡수 기관도 없이 어떻게 미국형 시스템이 우리나라에 도입되고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경제학에서는 경제제도의 수출가능성문제(exportability problem)라고 해서 심각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김현종 본부장은 낡은 일본형 시스템을 버리고 미국형으로 개조하는 게 우리의 살길이라고 아주 노골적으로 썼더군요. 그가 과연 알고나 하는 소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느 유형이 우수한가에 대한 평가는 학자마다 다르고, 또 시대에 따라 달라집니다.
80년대에는 에즈라 포겔의 “JAPAN AS NO 1"이라는 책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미국형 비판과 일본형 예찬이 유행이었죠. 미국이 강요한 플라자 합의를 기점으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됐고 동시에 클린턴 행정부 때의 장기호황으로 현재는 그 평가가 역전됐습니다만 쌍둥이 적자로 대표되는 미국 경제의 취약성은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10년째 단골 메뉴입니다. 물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셉 스티글리츠(당선자 시절 대통령께서 스티글리츠 교수와 의기투합해서 해외자문단 의장으로 삼으려 했던 건 기억하시나요?)나 저명한 일본전문가인 찰머스 존스 버클리대 교수가 미국경제의 취약성을 맹비판하고 최근에도 스티글리츠교수가 한국에 대해 스웨덴형을 참고해야 한다고 충고한 사실은 보고 받지 않으셨겠지요.
앞으로 동북아가 세계경제의 중심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고, 이 지역의 경제모델이 세계의 표준이 됩니다. 결코 이미 한계를 보일 데로 다 보이고 군사력 밖에 의존할 데가 없는붕괴 일로의 미국형 제도는 결코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닙니다. 지금 정부가 하는 일은 난파선에 스스로 올라타는 격입니다.
한미 FTA로 동북아의 꿈도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도 심각하게 고민해 보셨는지요? 물론 중국도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중국위협론이 급작스레 부각되고 “중국은 한국사회의 양극화를 부추기지만 미국은 아니다. 정반대로 미국형으로 개조하는 것이 살 길”이라는 말도 안되는 얘기, 적어도 엄청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얘기를 공공연하게 청와대에서 하고 있는 건 또 어떻게 봐야 할까요? 혹시 한미 FTA가 남북관계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오히려 한미FTA가 전략적 유연성과 함께 중국과 북한의 연계만 강화시킬, 뿐 국민의 정부 이래로 공들인 우리의 노력마저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 것이라는 걱정이 앞섭니다. 한-미-일 삼각동맹이 강화되고 이에 대응해서 북-중-러 삼각관계가 돈독해지면 이런 걱정은 단순히 기우에 그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대통령 말씀대로 우리가 살려면 개혁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적 합의에 의해 국민이 스스로 참여하는 자발적 개혁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이루기 어렵다 하더라도 그러한 개혁만 지속가능합니다. 외부쇼크에 의한 개혁은 결코 아닙니다. 혹여 성공할지라도 그 쓰나미에 휩쓸려 생명마저 잃어버릴 수많은 약자들의 신음소리가 이제는 더 이상 들리지 않으시나요?
원론으로 얘기한다면 양극화는 외적 변화에 대한 사람 또는 집단의 대응능력의 차이에서 생겨납니다. 구조적으로 본다면 금융화를 특징으로 하는 현단계의 세계화, 정보격차, 노동시장 유연화, 그리고 부차적으로 중국 쇼크가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극단으로 몰아 가고 있습니다. 한미 FTA는 그 경향을 극단으로 밀고 가는 마지막 ‘자비의 일격(coup de grace)’입니다. 빨리 맺으면 맺을수록, 미국이 주장하는 골드스탠더드가 되면 될수록 그 타격은 심각해질 겁니다. 우리 경제가, 사회가 안락사하길 바라는 건 아니시겠죠.
조선일보는 제가 대통령의 변화(‘후반기 노무현’이라고 표현하더군요)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비아냥거립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난 3년간 특별하게 세상이 변한 게 없는데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사상, 또는 정책기조가 그리 쉽게 바뀔 수는 없습니다. 편지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대통령의 참모였던 사람으로서 몇가지 건의만 하고 끝내겠습니다.
첫째 낙관적 보고만 올라오게 하는 현재의 분위기를 바꿔야 합니다. 대통령의 신중론 한마디, 그릇된 보고자의 문책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둘째,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동안의 절차에 관한 모든 걸 다 공개해야 합니다. 저는 지난 4월 25일 국회 토론회에서 대외경제위원회 제1차에서 6차까지의 자료와 토론내용, 그리고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CGE 모형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권영길 의원도 공식으로 자료를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정부 참석자들도 이에 대응하여 스스로 공개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습니다만,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도 없습니다. 현재처럼 한미 FTA를 추진한다면 지극히 외람된 말씀이지만 대통령께서는 차기 국회의 청문회에 설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의 문제는 차기 정부에서부터 터져 나올 것이고 당연히 그들은 문제의 뿌리를 현 정부의 협상에서 찾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를 대비해서라도 투명하게 일을 진행해야 합니다.
셋째, 우리의 전략을 밝혀야 합니다. 협상에 필요한 세세한 정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경제 및 사회의 발전방향이 무엇인지, 그래서 어떤 건 하늘이 두쪽나도 지킬 것인지, 어떤 쪽은 포기할 것인지 방향을 알아야 국민도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조업은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습니다만 화학, 의료 등 민감한 산업의 대책도 마련해야 합니다.
넷째, 이미 동북아 위에서 금융전문대학원, 물류전문 대학원, FDI 대학원 등으로 단초를 마련한일이지만 시급하게 서비스업의 고급인력을 키워야 합니다.
다섯째, 중국의 서비스 시장 개방을 대비해서 전략적 차원의 외자유치, 국내 서비스산업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미국기업에 대한 무조건 개방이 능사가 아닙니다. 서비스업 자체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DDA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여섯째, WTO의 규정에 비춰봐도 그렇지만, 한미 FTA가 맺어지면 일반적인 산업정책은 불가능합니다. 유일하게 가능한 것이 클러스터 정책입니다. 지역의 인프라를 형성하는 문제는 WTO에서도 인정하는 바이고 내외자를 차별하지 않고 특혜없이 네트워크 외부성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용한 정책입니다. 현재의 지역균형 차원의 클러스터 조성 정책을 수정해서 그 중 두세개는 내셔널 클러스터를 만들어야 합니다.
일곱 번째 공공성을 훼손할 수 있는 조항은 FTA에 명시해서 미리 못을 박아 놓아야 합니다. 당장 미국이 제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냥 넘어가면 언젠가는 BIT2004의 투자조항에 따라 하나 하나 문제가 될 겁니다. 의료나 교육, 공기업 민영화의 특정 분야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협정 자체에 집어 넣어야 합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지금의 속도는 가능한 한 늦춰야 합니다. 지금 정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해내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세계 최강국과 협상을 하는 겁니다.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바람직하기로는 FTA 협정의 체결 자체를 차기정부의 검토까지 거친 후로 미뤄야 합니다.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반영하는 것이 여러모로 바람직합니다.
대통령께서 이 글을 볼 즈음, 저는 멕시코에 있을 겁니다. 이 편지의 제목을 “멕시코로 갑니다”라고 한 것도 그 때문이죠. 물론 멕시코와 우리는 많이 다릅니다만 미국의 강력한 영향력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특히 공공 영역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직접 눈으로 보려고 합니다. 이제는 보고서를 쓸 수도, 써봤자 전달이 안될 걸 잘 알기에 이 지면에 멕시코 보고서를 공개하려고 합니다. 부디 참조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