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에 나는 한 명의 남자를 알콜 병동에 입원시켰어. 제 자식 업고 있는 아내의 목에, 그러니까 제 자식의 머리통 위에 시퍼런 식칼을 들이밀고 으르렁대던 사람이었지. 그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어.
첫 제보가 온 게 2006년이니까 내가 만났던 세 살 박이 아이가 막 태어났을 때도 이미 상태가 "술이 좀 과한 수준"은 많이 넘었던 모양이야. 제보의 내용은 확실히 '셌고' 지속적으로 와서 다른 PD가 현장에 출동하기도 했었어. 그런데 하릴없이 돌아와야 했지. 정작 제보는 친정 동생이 한 것이고 문제의 피해자는 제작진을 만나는 것조차 거부했기 때문이야.
그런데 지난 가을에는 괴롭힘 당하다 못해 아내가 자리를 피했을 때 남편이란 작자가 술에 취해서는 말도 못하는 두 살 박이 아이를 쳐들고 다른 한 손으로 아이의 뺨을 난타하고는 그 울음 소리를 핸드폰으로 들려 주는 사건이 발생했어. "애 죽이기 싫으면 들어오라"는 거였지. 사진 속의 아이는 멍한 표정으로 얼굴이 띵띵 부어 있었어. 결국 또 친정 동생이 제보를 했고 이번에는 피해 장본인도 동의를 했다. 자기가 맞는 건 참아도 애가 맞는 건 못 참겠다는 거지.
그 아내만큼이나 속을 끓였던 사람이 우리에게 끈질기게 제보해 왔던 친정 여동생이었어. 싸움 아니 일방적인 폭력이 행해질 때마다 출동(?)했던 것은 물론이고 피난처 제공에다 대리전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해. 남편이 주먹을 넘어서 뭔가를 손에 든 뒤에는 자신도 생명의 위협을 느꼈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는 거야. 형부의 알콜 병통을 치료해 보자고 남편의 친가쪽 식구들 (그 도시에서 셋째가라면 펠리칸처럼 입술을 내밀만큼 고대광실같은 식당을 둘 씩이나 운영하고 있는) 에게도 호소해 봤지만 그쪽 식구들의 반응은 딱 이거였대.
"그쪽 가정 문제니 그쪽 가정이 알아서 해야지."
알고보니 남편은 결혼 전부터 술 문제를 끼고 살던 사람이었고 시댁 식구들도 진저리를 치다가 벼락치기로 어물어물 장가를 들인 것이야. 그리고 그 뒤에는 모든 책임을 며느리에게 전가해 버리고 '알아서 해라'고 팔짱을 껴 버린 게야.
상태가 심각해져서 응급 입원을 시켰다가도 "크리스마스가 내일 모렌데....." "애 생일이 언젠데...."하면서 빼낼 궁리만 했고 빼낸 뒤에는 "가정 문제니 알아서 해라"로 일관했다는 거야. "우리 시숙도 술 먹으면 자기 아들에게 칼 겨누고 그랬는데 탈 없이 잘 컸더라"는 게 시누이라는 인사의 충고였다는군. 언니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의 심경을 동생은 이렇게 표현했어. "그냥 불 질러 버리고 싶었어요. 사람같지 않은 사람들 다 태워 버리고 싶었어요."
대한민국에서 법대로 해~의 외침은 역시 가해자들의 전유물이야. 전치 3주나 4주 이상 나오지 않는 한 경찰은 "싸우지 마세요"라고 심드렁하게 한 마디하고 가면 임무 완수고, 명백한 알콜 중독자이며 자해와 타해의 위협이 뚜렷한 정황에도 불구하고 그 풍족한 시댁 식구들에게 방치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있어도 유명무실이고, 발동한다 해도 한정치산이더라는 말씀이야. 이혼? "이혼하면 되지 왜 그러고 사냐?"라고 품위있게 나무라는 분들이 많은데, 합의이혼이 아닌 한 이혼에 이르는 길은 문경새재에 대관령 고갯길이야. 거덜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고.
예의 그 으리으리한 식당에 들러 남편에 대한 치료를 권유했을 때 시댁 식구들은 문제가 있으면 경찰에 신고하라며 자신들은 치료 동의든 뭐든 해 줄 수 없노라고 쇠심줄처럼 우기더라고. 자신들의 동의가 없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그들이었는데 말이지. "내 동생이 아니고 나는 그 사람과 터럭만큼도 연관되고 싶지 않다."고까지 했어.
일정 기간만큼은 치료비를 보조해 주겠다는 병원측의 선의를 전달한 뒤에야 (원래 치료비 다 내라고 뻗댈 생각이었는데) 그럼 또 모르지..... 식으로 돌변하는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진한 위액이 혓바닥으로 역류한 것 같더군. 치료비는 안 든다는 거지요? 하면서 아금박아 두려는 식구들 모습을 보기가 역겨워 고개를 홱 돌렸을 때 나는 습관인지 또는 뭣 때문인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친정 동생의 모습을 보았어. 원래 하얀 얼굴이지만 더 새하얗게 변해 있더군. 눈만큼은 새까만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고. 뭔가 '불 질러' 버릴 사람의 표정이 저런 거구나 싶더라고.
드디어 남편이 병원에 가는 날이 왔어. 형에게 팔뚝을 잡힌 남편은 공포에 질려 앰뷸런스에 올랐지. (정신병원 입원이 유쾌할 건 없지만 그렇다고 공포에 질릴 일은 아닌데) 아름다운 모습이 연출될 것 같지는 않아서 처가 식구들은 나올 필요가 없다고 말해 뒀는데 아내의 동생, 즉 처제가 우리보다 먼저 나와 있었어. 그런데 묵묵히 과정을 응시하고 있던 그녀가 갑자기 앰뷸런스로 와락 다가서는 거야. 욕이라도 퍼붓게 되면 분위기 사나와질 텐데 하는 걱정이 더럭 들었는데 처제가 꺼낸 말은 우리를 또 다른 의미의 긴장 속으로 몰아넣었어. "형부 잘 갔다 와요." 그녀는 뜻밖에도 울먹이고 있었어.
일순 어리둥절해진 일행 앞에서 처제는 덜덜 떨고 있는 형부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지. "형부 살리려고 가는 거니까. 겁내지 마요. 살리려고 이러는 거야. 치료 잘 받아요. 내 꼭 가 볼게."
간절한 어조였어. 결코 가식은 아니었지. 가식이 등장할 타이밍도 아니었고. 앰뷸런스를 둘러싼 어리둥절함은 숙연함으로 변했어. 어제까지만 해도 그 자식은 내 동생 아니라며 죽이든 살리든 알아서 하라고 기세등등하던 가해 남편의 형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걸 보니 나도 기분이 이상해지더라고. 울음에 잔뜩 젖은 목소리로 처제는 덜덜 떨고 있는 남편을 계속 달랬어.
"괜찮아요. 겁먹지 말아요. 의사 선생님 말 잘 듣고 응?"
차는 떠났어. 그리고 한참 동안 처제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지. 내 머리 속에서 숙연함이 서서리 가시자 의아함이 그 공간을 가득 채웠어. 아니 그렇게 웬수같던 사람, 자기 언니한테 칼을 들이대고 자기한테마저 위협을 서슴지 않았던 사람에게 어찌 그런 정다운 멘트가 술술 나올 수 있었을까. 언니에게 제발 어떻게든 헤어지라고 설득해 온 것이 그 동생인데, 그녀에게 가족의 정이 남아 있었던 걸까. 왕년에 잘해 주던 형부의 추억이 되살아난걸까. 냉정을 되찾은 그녀에게 물었지. 왜 그러신 거예요.
"저도 모르겠어요. 근데 불쌍했어요. 형부가 형 가게에서 일할 때 일 못한다고 형한테 심하게 맞고 오곤 했어요. 언니랑 같이 끌어안고 울고 그랬죠. 누구도 사람 취급 안했어요. 우락부락한 아저씨들(응급이송단)이 눈 부라리고 지킨 틈에서 오돌오돌 떠는 걸 보니까 그냥 그렇게 됐어요."
"아니 술처먹고 언니한테 칼 들이댄 인간인데......"
"저를 문 강아지도 비맞고 떨면 불쌍한 법인데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며 껄껄 웃었어. 그건 처제의 말이 기발해서도 아니었고 일을 끝낸 유쾌함 때문도 아니었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내 자신에 대한 찝찝함을 얼버부리기 위함이었어. 술자리에서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가져야 한다고 후배들에게 뻔질나게 얘기하면서도 나는 내가 만나는 가해자들, 우리 팀원들이 '슈렉'이라 칭하는 인간들에 대한 애정을 거의 잊고 지내고 있었다는 멋적음이 되살아난 거야. 문득 튀어나온 내 윗말을 보라지. "술처먹고 칼 들이댄,,,," 본능적으로 나는 그의 행동을 인간 이하의 단어로 묘사하고 있었어.
솔직히 그 가족들을 설득하면서 "치료를 받게 해서 정상적인 삶을 살게 해야 할 거 아닙니까?"라고 부르짖긴 했지만 나 자신 그 남편이 앞으로 어떻게 될까에 대한 질문은 관심 밖에 있었어. 이혼을 원할 경우 나서 주신 변호사님과 아내가 결정하면 될 게고 일단 병원에만 집어넣는 걸 촬영만 하면 내 일은 끝이다 하고만 되뇌고 있었지.
물론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하지만 나는 내가 가질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애정마저도 포기...까지는 아니라도 방치하고 있었던 거야. 저를 문 강아지도 비맞고 떨면 불쌍한 법인데 말이야. 하물며 물린 사람이 저러는데 물리기는 커녕 칼 들이대는 거 들여다보면서 욕설이나 퍼부었던 사람이 말이지.
이 프로그램을 얼마나 더 할지 모르겠지만 인간 슈렉들, 우리 말로 '째마리'들은 앞으로도 무더기로 내 앞에 나타나지 싶어. 그럴 때마다, 불뚝밸이 솟아서 한 대 쥐어박고 싶고 걷어차고 싶고, 그렇게 살다 뒤져라 저주를 퍼붓고 싶을 때마다 나는 처제의 눈물 젖은 위로를 떠올리려고 해. "형부 잘 갔다 와요. 형부 살리려고 이러는 거니까......" 극단을 체험하고서도 자신을 극단으로 몰았던 사람의 공포를 줄여 주려고 노력했던 한 목소리를 잊지 않으려고 해.
그래야 세월 따라 세상이 변하고 나도 변한다 해도, 자기 관내에서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한 직후에 "그 인간들 떼잡이들"이라고 멍멍대는 구청장같이는 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무슨 사정이 있는지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화염병을 던졌으니 자기도 불타 죽어도 싸다는 언사에 가담하지는 아니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