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잊지 못할 일

"시인이 기록한 피와 수난의 역사"-4.3항쟁

색즉시공 2006. 4. 3. 09:26
과거란 단순히 '흘러간 시간들의 집합'이 아니다. 어느 현자의 말처럼 "과거란 현재의 거울이며 미래를 확신케 하는 가장 명확한 근거"라는 근사한 수사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알고있다. 과거(역사)에 대한 반성과 성찰 없이 미래에 대한 설계가 있을 수 없다는 걸.

지금으로부터 58년 전. 인구 20만의 제주도에서 3만 명이 죽었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는 "빨갱이와 폭도를 척결했다"고 말했지만, 과연 그럴까? 그들의 죽음 속에 정말로 '붉은 이데올로기'가 꿈틀대고 있었던 것일까?

오랜 시간에 걸친 진상규명 노력을 통해 제주 4·3항쟁 때 학살당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사회주의 이념이 무엇인지, 모스크바(당시 정부의 고위인사들은 제주도를 수많은 공산주의자들의 활동하고 있다하여 '리틀 모스크바'라 불렀다)가 어디에 붙어있는 도시인지도 모르는 양민들이었다는 것이 이미 밝혀졌다.

1948년 봄 제주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그날의 일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 했던 1970~80년대 군사독재시절. 이 땅의 작가들은 체포와 투옥, 고문을 각오한 채 자신들의 작품 속에 이런 기록을 남겼다. 고통을 감수하고라도 진실을 알리고싶었던 것이다.

떼죽음 당한 마을이 어디 우리 마을뿐이던가. 이 섬 출신이거든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라. 필시 그의 가족 중에 누구 한 사람이, 아니면 적어도 사촌까지 중에 누구 한 사람이 그 북새통에 죽었다고 말하리라.
-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 중에서.

혓바닥을 깨물 통곡 없이는 갈 수 없는 땅. 발가락을 자를 분노 없이는 오를 수 없는 산... 그들은 말한다. "아무데나 질러대는 총을 피해 산으로 올라간 것도 죄가 될 수 있는가?" 제주도의 아름다운 여행지는 모두 우리가 묵념해야 할 학살의 장소이다... 제주도에 핀 노란 유채꽃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칼날을 입에 물고 잠들어 있다.
- 이산하의 장편서사시 <한라산> 서문 중에서.


제주도 출신의 시인 허영선이 펴낸 <제주 4·3>(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은 바로 이런 '역사 속 진실 찾기'의 연장선상에 서있다. 허 시인은 담담하지만 적확한 어법으로 사람들에게 4·3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를 이야기 들려준다.

담담하고 명확한 목소리로 듣는 진실...미국과 이승만의 책임을 묻다

▲ 지난해 4월 3일 제주에서 열린 '4.3항쟁 57주년 범도민위령제'.
ⓒ 홍성식
2차대전 직후 냉전체제 하에서의 한반도 상황과 남한에 들어선 미군정의 실체, 척결되지 못한 친일파와 이로 인한 민족적 열패감. 그리고, 전사회적 혼란 속에서 부당하게 행해진 제주도민에 대한 정부의 탄압 등 제주 4·3항쟁을 둘러싼 온갖 배경과 내외적 조건들을 설명하는 허영선의 문장은 간명하기에 이해하기 쉽다.

책은 또한 제주 4·3을 촉발시킨 사건에서부터 항쟁의 진행과정, 4·3이 남긴 상처와 교훈까지를 조목조목 기록하고 있다. 이 속엔 학살을 목도한 사람들의 체험담도 실려있는데, 당시 토벌대의 광기와 야만성이 어땠는지를 짐작케 해준다.

"토산리 창고 부근에서도 총살이 있었는데 사람들을 모아놓고 구경하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들이 총살할 때 박수를 치라고 했다. 총살 때 아기가 폴폴 기어서 위로 올라오니까 아기에게도 총을 쏘았다."
- 오태경(당시 23세)씨의 증언.


비단 오태경씨 하나만이 아니다. 제주도엔 이와 유사한 형태의 학살과 고문을 증언할 사람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그럼에도 정부가 4·3 유족과 제주도민에게 공식적인 사과의 말을 전한 건 불과 3년 전인 2003년 10월. 그간 4·3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겪었을 크나큰 고통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책의 마지막. 허영선은 "4·3은 미군정 하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 사건의 핵심에 있었던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미국은 그러한 야만을 저지를 권리가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시 정부는 제주도 사태를 순리대로 풀려고 하지 않았다. 원인은 치유하지 않은 채 오로지 강경 일변도로만 대응하였던 것이다"라는 이승만 정부에 대한 책임 추궁 역시 매섭다. 그러나, 이 물음과 질책에 대한 답변을 듣기는 아직도 쉽지 않을 듯하다. 이는 '피와 수난의 역사' 제주 4·3이 여전히 진행형의 역사이기 때문이 아닐까.

앞서 말했듯 과거를 지나간 일로만 치부해 묻어버리는 것에 급급한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불행했던 과거의 힘으로 평화와 인권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허 시인의 말이 실현되기 위해선 제주 4·3항쟁에 관한 보다 명백한 진상규명과 엄정한 반성이 선행되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