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성 그리고 결혼
며칠 전 국가인권위원회는 지체장애 3급인 김아무개씨가 장애라는 이유로 회원가입을 거부당한 결혼정보업체 2곳에 대해 평등권 침해라며 해당 업체의 가입약관을 개정하도록 권고했다.
인권위는 “장애인도 자유의사에 따라 결혼을 선택할 수 있고 모든 인간과 같이 그 기회가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김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장애인이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배우자를 만나 아이를 낳아 기르고 가정이라는 포근한 자신의 울타리를 형성하고 싶어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본능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장애인들을 성이 없는 무성적() 존재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간에게 성이란 생물학적인 성(sex)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다양한 정서와 감정을 포함하는 활동으로서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이처럼 중요한 성이 장애인에게는 온갖 형태와 방식으로 억압되어 온 것이 현실이다. 오늘날 장애인들은 생활 속에서 성에 관한 정보를 습득할 기회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성적 욕구의 표현은 매우 ‘이상한 행동’이 되어 버리거나 아니면 이상해 보일까 두려워 스스로 표현하기를 거부하게 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성문제로 고민하고 갈망하고 있는 보통의 사람들이며 행복한 가정을 조성하여 행복을 찾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내가 대학생활을 하면서 가장 괴로웠던 순간은 많은 다른 학생들이 이성과의 단체 만남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같은 과 학생들이 즐겁게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나는 미리 조용히 그 자리를 피해 외톨이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소극적인 나 자신의 성격 탓도 있겠지만, 이성교제와 같이 지극히 본능적인 욕구에 있어서도 장애인들에게는 뭔가 거리가 먼 이야기인 것처럼 자격지심을 갖도록 우리 사회가 은연중에 암묵적으로 교육시켜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장애인으로 아이를 못 낳을까봐 그토록 반대하던 처갓집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혼해서 지금은 당당히 아들과 딸을 두고 나름대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지금 돌이켜보니 총각시절에 심각하게 골몰했던 결혼에 관한 수많은 고민들이 한때의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직 미혼의 장애인들에게 결혼의 고민은 예전의 나처럼 매우 심각하고 엄연한 현실로 남아 있을 것이 분명하다. 한 장애인 욕구조사에 따르면, 경제적 자립에 어려움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53%인데 견줘, 이보다 훨씬 높은 83%가 결혼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결과를 보아도 장애인의 결혼문제는 그 어느 문제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애인의 직업재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장애인의 결혼의 권리는 지금껏 등한시 되어 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의 적극적인 노력이 시급하다. 이러한 시점에서 장애인의 권리를 대변한 이번 국가위원회의 판결에 박수갈채를 보내지만, 과연 우리 사회 구성원의 몇 퍼센트가 장애인의 결혼에 대해 진정으로 공감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그리고 장애인이 당당하게 결혼의 권리를 가지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도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오길승/한신대학교 교수·인간복지학부 재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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