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국수집 소식 13호 |
제13호 2005. 12. 15
제가 허리가 아픈 바람에 몇 달을 허리 치료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강선생님과 문관
장님께서 저를 치료해 주시느라 힘드셨고요. 또 큰 호박 베로니카와 작은 호박 모니카가
참 고맙습니다.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고마운 분들의 관심과 배려 속에
민들레 국수집이 그나마 제 몫을 할 수 있었습니다.
분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백 마흔 내지 백 쉰 분정도 찾아오십니다. 새로운 손님도 많이
늘었지만 집 주인 어르신의 크신 배려로 민들레 국수집도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우리 손님들이 자유롭게 식사하실 수 있도록 뷔페식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여덟 달 동안이나 소식을 알려드리지 못했던 세월을 살펴봅니다.
후부터는 참으로 많은 곳에서 도와주셨습니다. 목포, 여수, 부산, 강원도, 제주도와 미국
과 캐나다 호주에서도 격려와 후원이 있었습니다. 택배 기사님들이 바빴습니다. 민들레
국수집 통장에도 고마운 분들의 정성이 쌓였습니다. 손님들이 늘어도 걱정이 별로 없습니
다. 그리고 민들레 식구들도 열 분이나 됩니다. 옥련동 민들레 집에는 강아지들도 아주 행
복하게 잘 있습니다. 또순이, 삼순이, 점순이, 장아찌 그리고 민들레입니다. 많은 분들이 민들레국수집에 와서 자원봉사를 해 주셨습니다. 전철과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두 세 시간 걸리는 거리를 기쁘게 오셔서 도와주신 천사 같으신 분들, 대구에서
주말이면 찾아오셔서 설거지를 도와주신 분, 남몰래 슬쩍 맛있는 음식을 내려놓고 가시는
고마운 분들 덕택에 민들레 국수집이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성탄과 새해에 하느님의
은총이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옵길 기도합니다.
는 일을 힘들어 하기에 동구 노인복지회관에서 일주일에 세 번, 오전 세 시간씩 일할 수
있는 일자리로 바꿔드렸습니다. 이슬만 먹다가 움직일 수 없을 정도가 되어 기독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퇴원하자마자 또 이슬을 찾습니다. 결국 여동생 집으로 돌아갔습니
다. 가끔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옵니다. 이제는 몸이 너무 약해졌습니다. 정근 씨를 위해 얻은 방이 빈 방이 되었습니다. 성욱 씨가 지낼 수 있도록 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루 막노동을 해서 몇 푼 받으면 컴퓨터 도박에 빠져버립니다. 그렇게 몇 달을 헤
매다가 말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런 후 석 달쯤 지나서 민들레 국수집에 찾아왔습니다. 배
고플 때는 언제든지 밥은 먹으러 와야 한다고 손가락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해
볼 마음이 있으면 또 시작하자고 했습니다. 어느 날 노숙생활이 너무 힘들다면서 다시 새
삶을 시작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석주 씨와 함께 민들레 쉼터에서 같은 방을 쓰도록 했습
니다. 어느 날인가 이십 만원을 주면서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사라져버렸습니다. 다행스
럽게도 며칠 전 아주 추운 날 찾아왔습니다. 밥은 꼭 먹으러 오라고 당부했습니다. 성욱 씨가 떠나가고 빈 방이 된 곳에 정진씨를 지내게 했습니다. 술을 드시지 않을 땐 부
처님 같았습니다. 너무 이슬을 많이 드셔서 인천의료원에 입원했습니다. 퇴원하자마자 또
술을 드십니다. 전기밥솥도 소주와 바꿔 먹었습니다. 쌀도 들고 나가서 소주와 바꿔먹었
습니다. 셋방은 싫다며 여인숙 방을 얻어달라고 해서 여인숙 방을 얻어드렸습니다. 몇 달
을 민들레 국수집 주변에서 얼씬거리다가 사라졌습니다. 강원도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무장적 민들레국수집으로 찾아왔습
니다. 공원에서 텐트를 치면서 살겠다고 합니다. 급히 방을 하나 얻었습니다. 보증금 백만
원에 월 십만 원짜리입니다. 겨우 세 식구 단칸방에서 지낼 수 있도록 살림살이며 밥솥 그
리고 이불을 챙겨드렸습니다. 얼마 후에 세상 살기가 너무 어려다시며 강원도 집으로 돌
아갔습니다. 그래서 일모 씨를 이곳에 지내게 했습니다. 주인 할머니 등쌀에 도저히 지낼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분간 민들레 쉼터로 옮기도록 했고요. 경화 씨가 지낼 수 있
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경화씨도 술에 취해서 주인 할머니와 대판 싸우곤 떠나갔습니다. 민들레 쉼터는 바드리시오 형제가 전기온돌을 깔고 전기 온수기를 설치하는 등 아주 깨끗
하게 수리해 주었습니다. 주헌 씨가 민들레의 집 식구가 된지 벌써 아홉 달이나 되었습니
다. 아마도 열 번은 집을 나갔습니다. 이제는 안 나간다고 말합니다. 아마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낸 책을 읽고 친구의 동생 같다며 찾아온 두 분 아주머니가 있었
습니다. 주헌 씨 누님의 친구입니다. 그렇게 미국에 계신 주헌 씨 가족과 연결이 되었습니
다. 주헌 씨 어머님도 살아계신다고 합니다. 미국 누님 댁에서 주헌 씨 영주권을 보내왔습
니다. 11월 16일에야 미대사관에 가서 영주권 포기하고 외교통상부에 가서 여권취소를 하
고 동사무소에 주민등록을 신청했습니다. 생활보호 수급자 신청도 했고요. 장애인 등록도
신청했습니다. 주헌 씨의 장애 판정은 시각장애 1급입니다. 각막이식을 받는다면 볼 수 있
는 희망이 있다고 합니다. 며칠 전에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고, 농협에 가서 주헌 씨 이름
으로 저금통장도 하나 만들었습니다. 요즘은 민들레국수집 주방 설거지를 도우면서 아주
멋지게 살고 계십니다.
욱 씨가 한 방을 같이 쓰다가 떠나가고, 일모 씨가 있게 되었습니다. 스무 날이나 굶었던
민기 씨가 새 식구가 되었습니다. 추석 며칠 전에 진원&춘자 커플이 자유공원 계단 밑에서 지내기엔 너무 춥다면서 밥을 하
나 얻어주었으면 바랐습니다. 보증금 조금 그리고 월 12만 원짜리 단칸방을 추석 전에 선
물해 주려고 구했습니다. 이불과 옷가지도 챙겨드렸고요. 집에서 밥도 해 먹고 그러라고
밥솥과 쌀, 그릇을 한 살림 챙겨드렸습니다. 그런데 너무 답답하다며 하룻밤도 자 보지도
않고 다시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버렸습니다. 민들레국수집 옥상 방에는 상영 씨가 있었습니다. 종민 씨가 떠나간 다음에 이층으로 대
성 씨가 들어오고, 대성 씨 있던 방에는 상영 씨가 갔습니다. 상영 씨는 5월달에 민들레의
집을 영영 떠났습니다. 그래서 동진 씨가 들어왔다가 슬그머니 사라지고 그 방에 솔로몬
할아버지가 들어오셨습니다. 솔로몬 할아버지는 민들레국수집의 후원자이십니다. 매주
두 번씩 차를 세차해 주고 한 달에 이 만원 정도 받는 일을 하십니다. 방세 낼 돈만 마련하
시면 나머지는 천국에 갈 노자 마련하신다면서 민들레국수집 후원금으로 내어 놓으십니
다. 겨울에는 물이 얼어서 세차 일도 못하십니다. 전기세를 아낀다면 정기장판도 쓰지 않
으려 합니다. 자존심이 강하셔서 아무래도 몰래 몰래 도와드려야 합니다. 민들레국수집 이층에 온 대성씨는 강도령님의 소개로 열심히 일도 다니고 돈도 모으고 참
잘 지냈습니다. 그리곤 석 달 전에 독립을 했는데 다시 노숙생활을 합니다. 한번 노숙자는
영원한 노숙자다!”라면서 해병대가 써먹는 말투를 흉내내고요. “외로워서 다시 노숙생활
을 한다”고도 합니다. 모아 두었던 돈도 다 써버린 모양입니다. 얼마 전에 만원 빌려가더
니 한 동안 나타나질 않습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우리 민들레 국수집 손님들과 어울려서
밥을 드시러 옵니다. 날이 더 춥기 전에 다시 돌아오면 좋겠습니다. 옥련동 민들레 집에는 봉렬 씨와 선호 씨가 잘 지내고 있습니다. 기성 씨가 허리가 많이
아파서 지하도에서 앵벌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문관장님의 도움으로 허리 치료를 하면서
석 달 동안 옥련동에서 몸조리 잘 하다가 자기 삶터로 돌아갔고요. 성남에서 누님 댁에 더
부살이하던 쉰 한 살인 종석 씨가 새 식구로 왔습니다. 종석 씨는 정신이 약간 문제가 있
습니다. 정신 3급이거든요. 텔레비전을 보고 왔다는데 어찌합니까, 하느님이 보내주신 우
리 식구인걸요. 김장하러 봉화 내려가서 얼마나 잘하셨는지요. 선호 씨랑 봉렬 씨랑 잘 지
내고 있습니다. 성일이네는 그럭저럭 변함없이 지내고 있고요. 성일이는 중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에 합
격했습니다. 이제는 야학에서 중학교 과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상을 떠나면 동사무소에 신고나 해 달라고 부탁하셨던 어르신이 계셨습니다. 사업을 하다
가 정리했고, 기도원에 노후를 의탁하기 위해 몇 천만원 가지고 있었는데 사기를 당해서
빈털터리가 되었답니다. 가족은 있지만 연락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매일 안부 전화
를 드렸습니다. 점점 몸이 불편해지시더니 나중에는 꼼짝도 못하십니다. 인천의료원에 입
원하시도록 했습니다. 보증인 도장을 찍으면서 혹시 연고자가 나타난다면 취소하기로 했
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아들이 나타났습니다. 성남의 병원으로 옮기셨고요. 얼마 후에 저
세상으로 가셨습니다. 아들은 노인이 뭔가 남겨놓은 것이 없는지 많이 찾는 눈치였습니
다.
바람에 수요일에도 주방을 맡아주셨고요. 손미현님과 지원 엄마께서도 도와주셨습니다.
와주시는 “한마음회”의 김영현님과 이재숙님, 얼마 전에는 멋진 총각 두 분도 홤께 도와주
십니다.
주시고요.
베드로 형제님도 와서 도와주시고요.
셋째 금요일에는 오전에는 청송 2교도소 형제들을 만나고, 오후에는 청송 교도소 형제들
을 만납니다.
도소를 방문하면서 여름 휴가를 보냈습니다.
했습니다. 올해는 허리 아프다는 핑계로 갇힌 형제들을 찾아보는 일을 소홀히 한 것 같습
니다.
12월 15일까지의 8개월간의 민들레국수집과 민들레의 집과 교도소 활동의 살림살이는 하
느님 앞에 숨겨둡니다. 2006년도에는 제대로 보고드리겠습니다.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
드립니다. 이웃들과 잘 나눴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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