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또 하나의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준비이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날마다의 죽음을
만나도 이별은 늘 가슴 아프다.
수 년전 위령 성월(가톨릭 교회는 전 세계적으로 매년 11월을 위령성월로
지정하고
죽은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기억한다)이 시작될 때의 일이다.
늦은 가을이면 가을앓이를 한
차례하고 지나가야 하는 내게 위령 성월은 그 앓이를 더해
주곤 한다.
해마다 이 때쯤이면 주변의 아주 가까운 사람 중의 누군가가 돌아가신다거나 내가 다치는 사고가
나곤 했다.
유난히 죽는다는 게 무서워 이불을 뒤집어 쓰고 혼자 울고 불고 하던 국민학교 4학년 때의
일기장을 들춰내지 않더라고 내게 있어서 죽음은 오래 전부터, 그리고 오랫동안 묵상의 주제가
되어 왔다.
그 해 위령 성월 첫 주, 조금 쌀쌀한 날씨이지만 오래 전부터 벼르던 산책을 하기로 했다.
산책이라야 왕복 두 시간 반 정도의 근처 산에 있는 절에 다녀오는 일이지만 길에 인적이
뜸하여 큰
결심을 해야 할 때도 있다.
30분쯤 걸어 산기슭에 도착했을까 하늘이 캄캄해지면서 후둑후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당에 널어 놓은 무말랭이도 걱정이 되고 춥기도 했지만 오래간만의 산책이라 계속 걸
었다.
"비 사이로 막 가(?)"는 사람도 있다는 데 내 수준으로는 뚫고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빗
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뛰다가 축사 처마 밑에서 비를 피했다.
진한 시골 냄새와 두세
뼘도 채 안 되는 처마 밑으로 들이치는 빗물은 한층 더 늦가을의
정취를 더해 주었다. 캄캄한 하늘에서는 그칠 줄 모르고
비가 내렸다.
날이 어둡다고 한밤중으로 착각했는지 자연스럽게 켜져 버린 나트륨 가로등을 보며 피식
웃었다.
심한 바람까지 함께 한 빗방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나뭇잎들이 허공에서 몇 차례 돌더니
대지의 맨살을 온통 덮어 버리고 말았다.
어느 새 벌거숭이가 되어 버린 나무가 처량해서인지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야속하리만치 더 굵어만 보였다.
한참을 추위와
개짖는 소리, 가축들의 울음 소리에 시달리면서도 이 비가 그치면 수녀원으로
되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계속 산책을 해야 할
것인가로 고민하고 있었다.
빗발이 조금 얌전해지자 다시 산책을 시작했다.
흠뻑 젖어 버린 온몸이
땀으로 다시 따뜻해지기 시작했지만 세차게 부는 바람은 계속
몸을 움츠리게 했다. 한껏 단풍이 들어 버린 나무들도 외부의
침입자 같은 세찬 바람에
못 견뎌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색을 만들어내기 위해 봄부터, 아니면 수 년전부터
부단히 노력해 온 그 공로도 아랑곳없이 해마다 이 때면 나무들은 잎새들을 제 온 곳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인생이 길어야 70, 그나마 근력이 좋아야 80..." 이라고 했던
시편 저자의 말처럼 우리들도 어느 순간에는 제 온 곳, 하느님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 날이 마지막인 것처럼 저녁에 눈감을 때면 이 밤에 하느님 곁에
갈 것처럼 준비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네 삶의
모습이 되어야 하지만 늘 부족하다.
나중에 하느님께 가서 종아리 맞을 일이 가끔 아찔하기도 하지만 왜 마냥 우리네 삶은
부족하고 후회스러울까.
산책의 분위기를 더해 주던 老 스님의 독경 소리, 그리고 절 근처
차가운 땅에
어머니의 주검을 묻고 바닥에 주저앉아 목놓아 울던 가족들의 모습은 얼마 전 들은
<사말의 노래>를 더 애잔하게 떠올리게 했다.
알지 못하는 분이지만 마음으로 그 영혼을
위해 시편 130편도 외어 드렸다.
영혼을 위로해 드리려 부처님앞에 향이라도 피우고 싶었지만 세찬 바람은 몇 개의
성냥을 그냥 허비하게만 했다.
산사의 겨울은 유난히 빨리 찾아오는지 한겨울 김장을 준비하는
스님과 보살님들의
모습은 긴 장례 행렬과 아주 대조적이었다.
삶을 준비하고 다른 한 곳에서는 삶을
마감하고...
글을 쓰는 동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는 그날 내가 보았던 모습과 적격이었다.
"우리가 지금은 헤어져도 하나도 아프지 않아요. 그저 뒷모습이 보였을 뿐 우린 다시 만날테
니까..."
그날 산책에서 느낀 모든 것들의 함축이었다.
나무를 떠나가던 잎새들도, 땅에 묻히던
그 주검도 그저 뒷모습을 보였을 뿐 다시 만날 것이다.
이별이 하나도 아프지 않은 건 아직 공감할 수 없지만...
비록 감기가 찾아왔어도 늦가을의 산책은 내 가을앓이의 치료제와 더불어 찐하게 위령
성월을 체험하게 했다.
날마다의 죽음을 체험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아니 적어도 돌보던 이들을 하늘로 돌려
보낸다.
군대에서 사고로 죽은 19살의 두 청년과의 이별도, 13살의 소아암 현아와의
이별도,,,,,
어느 날은 그 헤어짐에 가슴 아프고 하느님께 원망도 하지만 장례미사에서 늘 듣던
"죽음이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삶에로의 옮아감이니...."라는 경문에 위로를 받으며
오늘도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lcm.or.kr)
수녀들은 이 길을 가게 된다.
임종하는 이들의 머리맡에 존재와 기도로 함께 하기 위한 우리의 사명을 늘
되새기며
아들의 임종을 지키던 성모님과 수도회를 창립한 메리 포터의 유산을 지키고자 한다.
'잘
죽이기(?) 위한 수녀'들로 또한 우리 스스로 '잘 죽기 위한 수녀'로 나 또한 이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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