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한미FTA반대

[한-미 FTA] 배경과 의미

색즉시공 2006. 3. 25. 12:58
지난해에는 양극화 문제가 전사회적 의제로 부상하면서 많은 관심과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올해에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정책처방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부의 해괴망측한 억지논리에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추진 과정과 절차는 과연 현 정부가 참여정부인지 자체를 의심케 한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조차 2004년 말 우리 정부가 내비친 협정 체결 의향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음에도, 정부가 밀실에서 전격적으로 협정 체결을 추진하기로 가닥을 잡고 미국에 구걸한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2004년 말 이래 교착상태에 빠진 한-일 자유무역협정의 경우 협상을 위한 사전 연구 및 양국간 사전 논의가 여러 차례 있었으나, 이 협정보다 사안의 중요성이 더 큰 한-미 협정의 경우 사전연구팀이 전혀 공개되지 않았으며 연구검토 결과의 중간공개나 심지어 최소한의 공청회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동아시아 나라들 중 양국간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아주 적극적일 뿐만 아니라 우리보다 먼저 미국과 협정을 체결한 싱가포르 사례는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싱가포르는 한국·대만 등에 비해 훨씬 개방적이고 자유시장형 경제시스템에 가깝기 때문에, 미국-싱가포르 협정은 몇 달 내 아주 적은 횟수의 협상으로 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되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 12월에 시작된 협상은 2년 이상 지속되어 2003년 1월에야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우리의 경우 1년 안에 협상을 종결해야 하니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질 리가 만무하다.

싱가포르든 한국이든 미국과 체결하는 협정은 본질적으로 비대칭적이다. 즉 미국은 상대국에 농산물시장은 말할 것도 없고 금융서비스, 의료, 문화, 정보통신 인프라, 투자자유화, 노동·환경 조항까지도 포함한 포괄적인 시장접근을 요구하는 데 비해, 미국은 민감한 산업부문과 생산라인에 관련된 원산지규정을 빌미로 얼마든지 선별적이고 차별화된 시장접근 일정을 제시할 수 있다. 또한 상대국에 비해 관세율이 낮고 시장개방 정도가 훨씬 높은 미국으로서는 다른 나라들과 협정을 체결한다고 하더라도 일부 품목과 산업을 제외하면 손해 볼 게 거의 없다. 이에 비해 상대국은 미국과 정반대의 상황에 처한다.

미국과의 협정 체결이 초래할 더 심각한 문제는 협상이 광범위한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을 수반한다는 점이다. 일례로 미국은 싱가포르와의 협상 과정에서 시장개방은 말할 것도 없고 기간 국유기업의 민영화까지 언급했다. 나아가 1997년 동아시아 외환금융위기 때 위기의 파급을 차단하는 데 크게 기여했던 것으로 평가되는 싱가포르 통화당국의 자본통제 장치마저 철폐할 것을 요구했다. 이런 태도는 현재 진행 중인 타이와의 자유무역협정 협상에서도 그대로 관철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이 타이·싱가포르보다 시장과 경제규모가 큰 한국에 훨씬 강도 높은 시장개방과 구조조정을 요구할 것으로 우려된다는 점이다. 사실 최근의 양극화가 97년 외환금융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가 국제통화기금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실행했던 데서 기인한 바 크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통한 추가적인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양극화 해소는커녕 사회통합 기반을 송두리째 허물어버릴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끝으로 동아시아의 지역통합과 연대는 동아시아가 자유화·세계화 물결에 합류하면서도 동아시아 특유의 다양한 발전모델들을 확립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통과지점임에도 불구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은 모처럼 활성화하는 동아시아 지역 차원의 협력과 연대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이미 아세안 내에서 미국과 협정을 체결했거나 협상 중인 싱가포르·타이와 그밖의 아세안 나라 간에 동아시아 지역 통합의 방식을 둘러싸고 경쟁과 대립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안타깝다.

중국의 급부상과 한-중 경제교류의 강화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한-미 협상에 강하게 반영된다는 점 역시 동아시아의 지역 협력과 연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국과 일본이 중국을 중심으로 한 다자주의적 지역통합에 말려드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미국이 일본 및 한국과의 군사·안보 차원의 쌍무적 동맹 체제를 자유무역협정을 포함한 경제영역에서도 관철시키고자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전창환/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