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협정(FTA)은 국제법 분야의 반혁명이다. 문서의 구조와 문구 자체, 파장과 효과, 기본적인 사상에 있어서의
반혁명이다.
전통적으로 국제법이란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와 상호작용을 규제하는 일련의 합의와 규칙이다. 최근 들어 국제기구의 발전,
인권의 신장,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과 거대 자본의 발전 등으로 인해 국가 이외의 국제기구, 기업, 개인 등도 국제법의 주체로 편입되는 추세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국가 대 국가의 국제협약에 반하는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한 국가에 대해 다른 나라의 기업이나 개인이 직접
이의를 제기하거나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손해를 본 기업이나 개인이 속한 국가가 대리해서 다른 국가와 분쟁을 해결해 왔다. 왜냐하면
각 국가에는 입법, 행정, 사법에 있어서 주권이 있고 그에 대해 타국의 기업이나 개인이 도전을 하는 것이 격이 맞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개인과 기업에 청구권 주는 이상한 국제법 'FTA'
그런데 몇몇 양자간 투자협정에서 전조가 나타나더니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위시한 자유무역협정(FTA)은 거의 예외 없이 투자자가,
즉 개인이나 기업이, 다른 협정 당사국의 정부에 대해 중재절차를 통해 손해배상과 해당 정책의 철회 등을 구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고 있다.
이런 전례 없는 청구권을 미국 기업을 위시한 다국적 자본에게 주는 데에는 굉장히 특이한 구조와 문구가 사용된다. NAFTA의 예를
보면, 분쟁해결에 관련된 조항은 20장으로 다른 국제협약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투자관련
11장에는 특이하게도 투자자, 즉 기업을 위한 별도의 분쟁해결 조항이 있다. 국가간의 국제협약뿐만 아니라 국적이 다른 기업간의 국제계약에도
분쟁해결에 대한 규정과 절차는 협약이나 계약의 한 부분에 일괄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보통이다.
분쟁해결규정이 대부분 하나의 독립된
규정임을 고려할 때, NAFTA 및 그 이후 대부분의 FTA의 중재조항이 투자와 관련된 조항에 편입되어 있는 것은 이례적이다. 더구나 11장에서
'투자(investment)'란 기본적으로 자본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하며, '수용(expropriation)'이란 용어도 몰수 정도가
아니라 투자가치의 감소를 수반하는 정책결정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될 정도로 넓게 정의되어 있다.
국가정책도 뒤집는 FTA
중재조항
이런 특이한 중재조항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것일까? 다시 말하면 미국 정부와 그 배후의 미국 기업들은 왜 이런
조항을 국가간의 협정에 넣은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FTA에 근거하여 미국의 기업들은 마음대로 다른 당사국의 상하수도, 의료,
제약, 농업 등에 진출할 것이며, 그들의 기대이익에 반하는 다른 당사국의 정책이 있다면 이는 투자의 몰수(expropriation of
investment)로 간주되어 중재재판소에 회부될 것이다.
거의 비밀리에 진행되는 중재재판에 따라 당사국은 거액의 혈세를 보상금
또는 합의금으로 미국기업에게 헌납하고 해당 정책을 철폐하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아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환경정책 등 해당 공공정책에
대한 예외조항이 FTA에 명시되어 있어도 투자조항에 포함된 중재조항은 그런 모든 예외조항을 유명무실하게 만들만큼 강력한
것이다.
'환경정책으로 손해' 1600만 달러 받아내기도
실제로 몇 해 전 멕시코의 한 지방정부가 환경이
오염될 수 있다는 이유로 한 미국기업의 유독폐기물 처리시설에 대한 건축을 불허한다는 결정을 내린 적이 있다. 이 기업은 해당 정부의 이 같은
결정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이의를 제기했고, NAFTA의 중재판결을 통해 1600만 달러의 배상금을 받아냈다.
또 다른 미국 기업은
캐나다 정부가 환경 보호, 소비자 보호 등을 이유로 MMT라는 연료첨가물의 사용을 금지한 조치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 기업은 중재판결에 이르기도
전에 캐나다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1300만 달러의 합의금을 받아냈을 뿐 아니라 해당 정책도 철폐하게 하는 결과를 얻었다.
그 밖에
(그 유명한 엔론의 계열사인) 미국 기업이 부에노스아이레스 한 지역의 수도공급계약을 따낸 뒤 저질의 물을 공급하고, 급격한 가격인상을 단행하고,
병원과 요양시설에 대한 무상으로 물을 공급하기를 거부한 뒤에, 적반하장격으로 미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의 BIT에 근거하여 아르헨티나 정부의
후속조치에 대해 중재재판을 개시하여 거액의 배상금을 요구한 사건도 있다.
우리는 FTA를 주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나?
환경, 보건, 복지 등에 대한 공공정책은 사기업들 간의 경쟁과 자본의 흐름에 전적으로 맡길 수 있는 영역이라기보다는
국민이 자신들의 대표자인 국회의원들에게 국민의 복지와 국가의 이익을 위해 최선의 판단을 내려줄 것을 위임한 영역이다.
이런
영역에서 외국의 사기업들이 자신들의 이익 극대화만을 목적으로 국내정책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거액의 혈세를 손해배상금이나 합의금으로 가져가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은 피로 쟁취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다. 거창하게 얘기하지 않아도 정말 차 몇 대, 텔레비전 몇 대 더 팔면
에비앙 사먹고 몇 배로 비싼 값에 감기약을 사 먹어도 상관없고, 돈 안 내면 전기나 수도나 다 끊겨 버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다수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협상전문가들과 그들에게 이론적·이념적 기초를 제공하는 두뇌집단들을 앞세운 상대방을
앞에 두고 거의 무방비 상태로 있다. 협상은 그들의 언어로 진행될 것이며, 그들은 이미 부시에게 'Fast Track(신속처리권)'이라고 불리는
'Trade Promotion Authority(무역촉진권한)'를 주었고, 그에 따라 부시는 미국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돈줄을 위해
미국의회와 협의절차 등도 필요 없이 미상공회의소를 통하여 몇 명 되지 않는 우리나라 공무원들에게 달려들 것이다. 게다가 부시는 북핵, 전략적
유연성 등 '필살기'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FTA의 체결에 동의한 적이 없다. 동의해도 되는지 아닌지 판단할 시간도 없었고 언론에서는 아직도 사태에 심각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축구, 야구만 틀어대고 있다.
협상에는 시간과 전문가와 축적된 연구와 노하우가 필요하고 공청회와 텔레비전과
인터넷에서 토론이 필요하며, FTA 체결 전에는 국민의 이해와 합의가 필요하다. 확인되지 않은 경제적 이익을 꼼꼼히 따져보고, 협상 9단인
우리가 FTA를 주체적으로 결정했다는 괴변을 충분히 비웃어 주어야 한다.
[오마이뉴스 펌]http://economy.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18611&ar_seq=
'미국은?-한미FTA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미 FTA] 기업·업종 양극화 (0) | 2006.03.25 |
---|---|
[한-미 FTA] 배경과 의미 (0) | 2006.03.25 |
개같은 부시! (0) | 2006.03.23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0) | 2006.03.20 |
대추리의 잔인한 봄사진[펌] (0) | 2006.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