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좋아하세요?

세상에 귀하디 귀한 소리를 듣다[오마이뉴스 펌]

색즉시공 2006. 3. 27. 06:49
▲ 25일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을 뜨겁게 달군 윤진철 명창의 적벽가 완창 무대.
ⓒ 김기
국립창극단(예술감독 유영대)은 25일 오후 윤진철 명창의 '적벽가'로 2006년 완창 판소리 무대를 열었다. 21년 전인 1985년 시작한 국립창극단의 완창판소리는 그동안 판소리의 진수를 접할 수 있는 가장 권위 있는 무대로 자리잡아왔다. 새로운 극장장과 예술감독을 맞은 국립창극단의 완창 판소리는 겨우내 판소리 무대를 기다려 온 많은 '귀명창'들이 운집해 성황리에 첫 연주를 마쳤다.

올해 국립창극단의 완창 판소리은 모두 7회가 열린다. 3월의 윤진철, 5월의 김수연, 6월의 정순임, 8월 심야 공연 안숙선, 10월 이일주, 11월 유수정, 12월 제야 공연 송순섭 등 40대에서 60대에 이르는 우리 시대 최고의 명창들이 <적벽가>에서 <흥보가>까지 판소리 5바탕을 모두 들려준다.

완창 판소리가 비는 4월과 9월에는 국립창극단의 정기 창극 공연이 있어 3월부터 12월까지 국립극장에는 적어도 한 번의 판소리 공연을 접할 수 있게 됐다. 8월에 선보이는 심야 판소리의 안숙선 명창과 작년에 처음 시도되어 좋은 호응을 얻은 제야 판소리의 송순섭 명창은 벌써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어 한국인의 전통에서 세계인이 즐길 수 있는 음악으로 발돋음하고 있는 판소리. 국립창극단의 완창 판소리 퍼레이드는 심야 판소리와 제야 판소리를 제외하고는 매달 마지막 토요일 국립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2006년 그 첫 무대는 판소리 중에서도 귀하디 귀한 소리인 보성제 적벽가로 장식되었다. 그 뜨거운 적벽가의 한 가운데는 보성소리 명창 윤진철이 서있었다.

▲ 고운 용모와 닮은 뛰어난 서정성과 드라마틱한 성음기교를 지닌 윤진철 명창.
ⓒ 김기
현재 광주에서 활동하는 윤진철 명창은 최근 보성제 적벽가 완창을 해오고 있어 가히 적벽가에 관한 한 물이 올랐다는 말을 듣는다. 보성소리를 그에게 전한 정권진 명창은 소리에 있어서 정심(正心)과 정음(正音)을 특히 강조했다. 때문에 보성소리에는 판소리가 민중들 속에서 만들어진 구비예술임에도 불구하고 세련되고 절제된 미학을 발견하게 된다.

보성소리 중에서도 적벽가는 궁중정악의 오상고절(傲霜孤節)과 아취(雅趣)와도 비견할 만큼 품격과 예술미가 풍부하다. 그러나 적벽가는 삼국지를 원전으로 하는 까닭에 한자어가 특히 많고 춘향가, 심청가 등 다른 판소리에 비해 소담스런 재미거리가 덜하기에 흔히 듣지는 못하고, 또한 소리꾼이라 해서 쉬이 완창무대를 꾸릴 생각도 못하게 된다.

과거 풍류를 알던 세도가들이 판소리 명창을 지원하던 시절에 어디서건 적벽가를 하지 못하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던 때도 있었을 만큼 적벽가는 명창의 필수적인 레퍼토리면서 동시에 아무나 소화해 낼 수 없는 어렵디 어려운 소리였다. 해서 초면의 명창에게 양반들이 그 이력을 묻는 방법은 판소리계의 유명한 일화가 되어 전해오고 있다.

"적벽가는 하십니까?" 못한다 하면 그 다음으로 "그럼 춘향가는 하시는가" 그도 역시 못한다 하면 이제는 경어는 사라지고 "에라, 수궁가나 해보아라!"했다는 것이다(물론 이 일화에서 보여지는 것은 단지 당시 세도가들의 취향이었을 뿐 절대로 작품의 서열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에는 오히려 춘향가, 심청가 순으로 그 선호가 바뀌었다).

또 요즘 판소리계에 남자 명창은 그 수를 손꼽을 정도로 귀한지라, 남자가 부르는 꿋꿋한 기상의 적벽가는 더더욱 드물고 귀한 소리였다. 그런 중에서도 윤진철 명창의 적벽가는 보성소리의 특성에 판소리계의 이준기라 할 정도로 고운 용모와 그 용모를 닮은 뛰어난 서정성과 드라마틱한 성음기교로 많은 적벽가 팬을 몰고 다닌다.

▲ 정심정음의 보성소리와 잘 어울어진 조선시대 진품가구로 차림한 국립창극단 완창판소리 무대.
ⓒ 김기
그중에서도 "산천은 험준하고 수목은 총잡한디…"로 시작하는 그 유명한 새터령 대목에서는 그 화자가 호감을 얻기에는 불충분한 조조이지만, 새타령 대목이 시작되면서부터는 화자가 누구인지는 의미를 잃어 버린다.

누구나 가슴 속에 묻어둔 설움이나 아픈 기억 하나쯤 불쑥 튀어나오게 한다. 마치 무당이 죽은 혼령을 불러내어 한을 얘기하고 풀어내듯이 윤진철의 새타령은 사람들의 애잔한 기억들을 새삼스럽게 끄집어 내서 울게 하는 힘이 있다.

언제고 소리하다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을 것만 같은 윤진철 명창의 그 극적인 카타르시스가 그의 매력이자 또한 때로는 피하고도 싶은 마력이다. 게다가 올해 완창 판소리 무대는 예년에 비교해 크게 달라진 점이 있었다. 알고 나면 무릎을 탁 칠 정도로 멋진 안배지만 특별히 신경 쓰지 않으면 모르고 지날 그런 변화이다.

▲ 국립창극단 유영대 감독.
ⓒ 김기
이번 무대부터 무대 소품들이 확 달라졌다. 200년이 넘은 책 뒤주, 그 동안 멋없이 크기만 했던 병풍에서 실제 조선시대 사랑방을 옮겨 온 듯 소담하고 운치 넘치는 병풍, 명창이 소리 도중 자주 마시는 물 주전자와 그것을 이고 있는 개다리 소반 등등. 이는 국립창극단 기악부의 장종민씨의 공로로 고미술에 대한 뛰어난 안목을 알아챈 신임 유영대 감독의 지시로 이루어진 것.

해서 무대는 판소리만큼이나 나이 먹은 가구들이 자리 잡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간 듯 멋과 흥취가 넘쳐났다. 이날 객석은 고려대와 성신여대 국문과 학생들이 김기형 교수, 심치열 교수 등과 자리를 함께 했는데 어린 학생들의 눈썰미는 그런 무대의 품격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영화 <왕의 남자> 성공 이후 부쩍 높아진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공연이 끝난 후에도 로비에 삼삼오오 모여 판소리 완창무대에 대해 까르르 웃기도 하며 소감을 나누고 있어 판소리 공연의 객석이 대폭 젊어지고 화사해졌다.

유영대 감독은 오랫동안 판소리 연구 및 현장 해설을 통해서 젊은 학생들의 판소리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왔다. 실기자가 아닌 이론가가 이끄는 국립창극단은 좀 더 폭넓은 시야를 확보하게 될 듯하다. 창극단이 50년 넘게 유지해온 실기적 기량에 신임감독의 객관적이고 거시적인 안목이 더해졌으니 향후 3년의 멋진 발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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