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진보,개혁세력의 지리멸렬[펌]

색즉시공 2006. 5. 10. 17:10
[유승삼 칼럼] 진보·개혁 세력의 지리멸렬
[내일신문 2006-05-09 17:51]

유승삼 (언론인 KAIST 초빙교수)

잇단 공천 비리와 성추문으로 한나라당은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상식적으로는 한나라당의 인기는 바닥이어야 하고 열린우리당은 그 반사 이익을 챙겨야 옳다. 그러나 현실은 ‘아니올시다’이다. 한나라당은 여전히 지지율 30%대 후반 고공행진이고 열린우리당은 바닥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최근의 평택 미군기지 사태나 한·미FTA협상, 비정규직 법안 추진 등을 보면 그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일련의 사안에서 현 정권은 좌파나 개혁세력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를 하고 있다. 마치 행정을 한나라당이 하고 있는 느낌이다. 특히 평택 미군기지 시위대에 대한 시각과 대응은 권위주의 시대의 그것을 빼닮았다.

아니나 다를까.그동안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던 보수 언론에서도 이런 처리에 대해선 지지가 나온 바 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차이가 무언지 모르겠다”는 소리도 그래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변함없는 한나라당의 상승세

그러나 정부·여당의 문제는 아무리 그렇게 용을 써도 지지도가 올라가기는커녕 오히려 내려간다는 데 있다. 서울신문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열린우리당을 지지했던 386세대 등 진보층과 호남 유권자들이 부동층으로 떠돌고 충청권은 한나라당으로 기울고 있다. 이 때문에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가 고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여당이 한나라당과 경쟁하려면 좌파나 개혁세력, 시민단체 등의 지지를 규합해야 할 텐데 규합은커녕 갈수록 그들과 척이 지니 지지율이 바닥을 헤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여당이 아무리 보수화 하고 신자유적인 정책을 강화해도 보수층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는 이미 틀렸다. 보수층은 현 정권을 ‘무능한 좌파’로 낙인찍은 지 이미 오래이다. 또한 그 시각이 변할 리 없다. 한편 진보·개혁 세력은 현 정권이 보수화하면 할수록 부동층이 될 것이다.

지난 3월23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현 정부를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라고 스스로 규정한 바 있다. ‘좌파 신자유주의’란 표현은 어불성설이지만 현 정부의 모순과 샌드위치식 고민만은 적절히 표현해 주고 있다. 좌파로부터는 ‘신자유주의’정책 때문에 비판받고 보수 세력으로부터는 ‘좌파’라고 공격 받는 고민이 함축된 것이다.

그런 신세를 억울하게 느낄지 모르나 실은 인과응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경제를 살리라는 사회적 압력에 허둥대다가 어설픈 개혁추진을 포기하고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돌아서서, 보수층을 달래려했지만 얻은 것은 ‘무능하다’는 비판뿐이었다. 신자유주의정책이야 한나라당 등 구세력의 본령이니 현 정부가 한나라당을 따를 수 있겠는가. 사회적 약자로부터 욕은 욕대로 먹으면서 능력 없다는 소리까지 듣는 신세가 되었다.

위기의 근본은 이 정권이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을 내놓지 못한 데 있다. 정치개혁과 형식적 민주화에서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것이 이 정권이 가진 능력의 전부였다. 형식적 민주화의 추진 이후, 사회의 진보와 개혁을 지지하는 국민의 에너지를 한데 모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기득권 세력과 보수 언론의 집요한 반발이 장애물이 된 것도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아무런 청사진 없이 집권한 탓이다. 그것이 결국 신자유주의를, 마치 불가피한 것인 양 받아들이는 결과를 낳았고 이로 인해 진보와 개혁의 꿈은 물 건너 가 버렸다.

개혁세력은 새 비전 제시를

또 하나 아쉬운 것은 새로운 대안 세력으로 기대를 모은 민주노동당 역시 실망을 주고 있는 점이다. 민주노동당 측에서는 국민이 민주노동당을 ‘진한 열린우리당’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에 아쉬움을 토로하지만 그것은 자업자득이다. 대안 세력으로 발돋움하지 못한 채 그저 일방적 주장을 하는 극단적인 정치세력이란 인식을 벗지 못한 것은 능력 부족 때문이지 국민의 몰이해 때문은 아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많은 국민들이 서구식 사회민주주의에 대단히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진출한 데는 그런 기대도 단단히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그런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비전을 전혀 제시해주지 못한 채 현 처지에 감지덕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 상황은 한마디로 진보·개혁 세력의 지리멸렬이다. 진보·개혁 세력이 새로운 비전으로 몸을 추스르지 않으면 흐름의 반전은 불을 보듯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