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전남 어느 섬의 김 양식장에서 10 년 동안 노예 아닌 노예로 살았던 서른 셋 청년의 이야기가 방송을
탔습니다. 그 내용도 충격적이고 파장도 커서 방송 이후 꽤 오랫 동안 전화벨이 시끄러웠습니다. 격려도
있고 제보도 있고 까닭없이 분통을 우리에게 터뜨리기도 (왜 우리더러 그 나쁜 놈들 때려 죽이라고 화를 내시는지 원.....)
하십니다. 대개 전화 받기는 스크립터들의 소관이라 제가 시청자들의 말을 직접 귀에 담을 기회는 많지 않은데, 이번 건처럼 꽤
큰 이슈가 되면 저 혼자 사무실에 앉은 시간에도 전화가 울릴 때가 종종 있습니다.
편집하다가 졸려서 잠시 인터넷 두드리려 놀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받았습니다. 한 잔을 여러 번 걸친 듯한 중년의 사내입니다. SOS 24의 광팬이고 첫회부터 지금까지
빼놓지 않고 봤느니 어쩌느니 공치사 늘어놓다가 갑자기 이 남자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내 전라도 인간하고 상종도 안할 뿐만
아니라, 전라도에서 나는 김도 안 먹을 끼요 ."
종종 머리에 휘발유 뿌리고 성냥을 다발로 그어 뿌리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는데
이때도 그랬죠. 어떻게 대응을 할까 하다가 문득 이 전화가 시청자 제보 전화고, 전화를 건 사람도 'PD의 고객' 시청자라는
생각을 하며 가까스로 희미해져 가는 이성을 확보하고 정중하게 대답을 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대답을 위해선 아이템 목록이
필요했지요.
"몇 가지 알려 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뭔데요."
"저희 방송 한 회도 빼놓지
않고 다 보셨다고 하셨죠."
"아 그러문요. 난 화요일날은 술도 안먹어. 끄윽"
"그럼 잘
들으십시오. 첫회에 마누라 물고문했던 넘은 경남 00이 고향이고요. 친동생 성폭행했던 엽기적인 넘은 경북
00 이고, 엄마 팼던 게임 중독 꼬마는 충남 00, 언젠가 제 딸 앵벌이시키고 돈 안준다고 지 애비 팬
넘은 충북 00...."
"아 네... 저기요...."
"조금만 더 들으실래요? 언젠가 보셨던 그 악질
스토커는 강원도 00, 결벽증 걸려서 애들 손이 걸레가 되도록 걸레질시켰던 나쁜 애비는 충남 00, 그리고 이러 저러한 사건은 서울내기들이 한
짓이고요, 그리고 지난번에 현대판 노예는 경기도 00이었네요. 그리고 마누라가 정신이 돌도록 두들겨 팼던
개차반도 경기도 00, 이혼한 뒤에도 찾아와서 마누라랑 딸을 못살게 굴었던 쪼잔이도 경기도네요. "
"아...
그게....."
"저희가 방송을 안한 것도 다 알려 드릴까요. 친딸 성폭행했던 희한한 종자는 경남 00이구요, 제
부모 쓰레기집에 버리고 고대광실 살던 미친 넘은 부산이네요. 아 까먹었다, 군대까지 갔다 와서 밥 안차려 준다고 엄마 패던
개새끼도 부산이네요."
원래 말이 좀 빠르고 그만큼 발음이 잘 안되는 형편의 저이지만 이날만큼은 뉴스 앵커도
무색하게 또박또박, 축구 중계하는 라디오 아나운서만큼 재빠르게 '그들의 고향'을 알려 드렸습니다. 술 취한 시청자는 뭐라고
하며 제 말을 끊으려고 했지만 저는 냉정하게 결론까지 내 드렸습니다. "쭉 보니까 저희 아이템 중에 서울 다음으로 경상도가
제일 많네요. 선생님 고향이 경상도시죠?" 아까의 질문에서 "안 먹을 끼요...."라는 발음을 간파한
탓입니다. 내친 김에 저는 한 마디 더 내질렀습니다.
"선생님 이제 그럼 뭐 먹고 사실
겁니까?"
정말 밥값 아까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한민국에는......
자료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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