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바람과 물

새만금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막는 사업이다[코리아포커스펌]

색즉시공 2006. 3. 20. 20:36
새만금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막는 사업이다
수십조 원을 투여해 서해를 죽음의 바다로 만드는 망국의 조치다
이도흠 한양대교수 , 2006-03-19 오전 6:15:55  
 
마침내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왔다. 사법부가 기득권층의 죄를 합법화하는 장으로 전락한지 오래이기에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수억의 생명체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라 모두들 사법부의 망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천칭을 들고 있는 천사처럼, 만인 앞에 공명정대한 것이 법의 정신인지라 권력에 편향되지 않은 판결을 꿈꾸었다. 법마저 무너지면 그 집단의 타락과 부패를 막을 길이 없는지라 정의와 진리의 편에 선 결단을 기다렸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와 꿈과 기다림에 대한 철저한 배신으로 종결되었다. 이제 수억의 생명체가 죽임을 당하고 서해 바다가 서서히 죽음의 바다로 변하고 그 바다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병들어가는 것을 막을 길이 막연해졌다.

이제 새만금 갯벌에 둥지를 틀고 살던 수억의 생명체들은 서서히 죽음을 맞을 것이다. 매일 두 차례씩 들숨과 날숨을 쉬면서 청정함을 유지하던 서해 바다는 수십만 곳의 정화시설 구실을 하던 그 너른 갯벌을 잃고서 급속히 썩어갈 것이다. 그에 기대어 김을 기르고 조개를 캐고 물고기를 잡으며 공동체를 유지하던 이들은 삶의 터전, 노동, 자존심과 존엄성을 상실한 채 서서히 병자나 폐인이 될 것이다.

토지변경 조치를 3년만 하지 않아도 새만금보다 더 너른 농지가 확보된다

정부는 농지가 필요하다고, 그래서 33킬로미터에 달하는 세계 최장의 방조제를 조성해 갯벌을 논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언론들도 1억 2,000만 평(4만 100㏊)의 어마어마한 규모의 땅을 얻게 되었다고 난리들이다. 지금 쌀이 남아도는데 웬 소리냐고 하면 쌀 부족 시대를 대비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허나 누구보다도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리 주장하는 정부 부처가 이제 농지가 필요하지 않다며 매년 1만 5천㏊규모의 농지를 다른 용도의 토지로 변경해주고 있다. 3년만 이 정책을 추진하지 않아도 새만금보다 더 너른 농지가 환경파괴를 전혀 하지 않은 채, 한 푼의 세금을 투여하지 않은 채 고스란히 확보된다.

박정희 대통령 때는 그래도 쌀이 부족하고 갯벌의 가치를 몰라서 대형 간척산업을 강행하였다. 그러나 이제 초등학생들도 갯벌이 농지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그래서 네덜란드나 독일은 이미 막은 둑을 허물고 갯벌을 되살리는 자연회귀 마스터플랜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런데 왜?

새만금 사업이라는 어마어마한 국책사업이 국가의 미래에 관련된 어떤 목적이나 목표가 있어서 행해진 것이 아니었다. 1987년 노태우 후보가 전라도 표를 얻기 위해 선뜻 공약으로 발표한 것이었고 그 후의 대통령들도 따라간 것이었다. 농지조성이니, 복합산업단지 건설이니 하는 것들도 공약에 구체성을 입히기 위한 수사에 불과하다. 새만금 사업이 10년이 넘게 진행된 지금도 이를 어떤 목적으로 어떤 용도로 사용할지 아무도 모른다.

시화호가 죽어가면서 하도 구체적으로 선명하게 갯벌을 막는 일의 폐해를 알려 주고 사업을 계획한 자료와 보고서에 문제가 많았음이 드러나자 그들도 나름대로 계산해 보고 이 사업이 환경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경제적으로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애당초 나라의 미래와 국민 세금 수조 원이 낭비되는 것은 그들에게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로지 전북지사와 대통령을 만들어줄 표와 대형공사로 떨어질 떡고물만 눈에 보일 뿐이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찾은 논리가 “10년 동안 1조원 이상 투여하여 반환점을 넘긴 사업이니 계속 진행하여야 한다”였다.

그러나 감사원 조사로도 2011년까지 추정 공사비가 농지조성에만 5조 9,530억 원이 필요하고, 복합산업단지로 바꾸려면 28조5천529억 원이 더 투여되어야 한다. 수질을 보전하기 위해 하수처리를 하고 축산분뇨를 처리하는 등의 비용은 계산조차 하기 어렵다. 농지라면 더 말할 것 없고 복합산업단지로 조성한다 하더라도 거기서 생기는 이익이 매년 투여되어야 할 수질 보전 비용, 갯벌을 막아 사라지는 어족자원의 감소분, 오염되는 서해 바다의 정화비용의 합을 넘어서지 않을 것이라 단언한다.

더 나아가 30조 이상을 투여하였는데 새만금이 결국 제2의 시화호가 된다면 그 복구비용은 또 얼마나 될 것인가. 유럽처럼 납세자소송법을 만들어 새만금이 실패로 결론이 난 날 이 사업을 강행하자고 한 자들을 모두 불러내 국민의 세금을 낭비한 만큼 재산을 환수하자고 한다면, 아마 목젖이 터지도록 사업의 타당성을 주장하던 정치인과 관료, 언론인 대부분이 꼬리를 내릴 것이다.

대법원의 주장대로 “환경파괴에 대한 막연한 우려만으로” 새만금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수십 조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혈세를 낭비하는 무모한 국책사업이다. “이미 1조 9000억 원의 예산이 투여된 국책사업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 또한 마찬가지다. 설사 그 몇 배의 예산이 투여된 국책사업이라도 나라와 국민의 미래에 해가 되는 것이 명백하다면 중단하는 전례를 이번에 남겼어야 했다.
 
홍수를 막으면서도 물을 맑게 유지하는 법

나라와 국토의 미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 내려졌는데도 야구와 1억2천만 평의 수치에 미친 대한민국을 보면서 근본적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기 전까지는 그 어느 것도 미봉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홍수를 막는 방법은 크게 보아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댐을 쌓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물이 흐르는 대로 물길을 터주는 것이다. 현대 산업 사회는 인간과 자연을 이항대립으로 나누고 인간에게 우월권을 주었기에 전자의 방식을 택하였다. 댐을 쌓듯 인간 주체가 자연에 도전하여 자연을 개발하고 착취하는 것을 문명이라 하였다.

그러나 댐은 물의 흐름을 방해하여 물을 썩게 하고 결국 거기에 깃들여 사는 수많은 생물을 죽이고 심지어는 주변의 기후를 변화시키고 지진을 일으키기도 한다. 댐을 쌓는 것이 현대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에서 비롯된 대안이라면, 물길을 터서 물을 흐르게 하고 나무를 심는 것은 화쟁(和諍)의 불일불이(不一不二)의 패러다임에서 비롯된 대안이다.

화쟁의 패러다임을 가졌던 최치원은 홍수가 끊이지 않는 함양의 태수로 부임하자 위천의 홍수를 막기 위하여 상림이라는 숲을 조성하였다. 지금도 폭 200-300미터, 길이 2킬로미터에 걸쳐 200년 된 갈참나무를 비롯하여 114종, 2만여 그루의 활엽수목이 원시림과 같은 깊은 숲을 이루고 있다. 최치원은 상림을 조성하여 물은 나무의 양분이 되고 나무는 물을 품게 한 것이다. 그래서 위천은 1,000여 년 간 홍수를 내지 않으면서도 늘 맑을 수 있었다.

우리가 동강 댐을 놓느냐 마느냐로 시비할 때 미국 정부는 시민단체의 운동에 굴복하여 이미 지어진 댐을 수십 개나 파괴하였다. 그러자 강물은 흐르면서 자신을 정화하여 1, 2급수를 회복하였고 물고기와 새들이 돌아왔다. 사람들은 때로는 물살을 가르고 때로는 낚시를 던지고, 또 때로는 아름다운 강가에서 사랑도 나누고 사색을 하며 느리고 여백이 많은 삶을 다시 즐기게 되었다. 영국인들도 스모그로 5,000여명이 하루아침에 죽자 생태론적 패러다임으로 전환하였다. 우리 대한민국도 그런 비극을 맞고서야 의식의 전환을 이룰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