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한미FTA반대

[한-미FTA] 무능한 정당정치 개혁부터

색즉시공 2006. 3. 25. 13:10

일반적으로 자유무역협정은 국내 정치적 성격이 매우 짙은 대외경제 정책이다. 사회세력들이 협정 체결의 승자와 패자로 분명히 나뉘어 정치적 갈등과 대립이 첨예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국가에서 자유무역협정의 성공적 추진은 국제협상보다는 국내협상에 달린 측면이 강하다. 그리고 그 대상은 대개 일반 시민들보다는 협정에 대한 분명한 선호를 갖고 있는 조직화한 이익집단들이다. 결국 자유무역협정의 추진은 이익집단 정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진행된다는 것이다.

이익집단 정치를 논할 때 논자들의 관심은 정당의 역할에 집중된다. 정부와 이익집단을 연결하는 핵심 채널은 정당이기 때문이다. 정당은 사회의 여러 세력이 표출하는 다양한 이익과 요구를 집약하여 정책 대안으로 전환시키는 구실을 한다. 이러한 소임의 수행으로 정당은 사회통합 유지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다. 자유무역협정 정책과 관련해서도 정당이 제 기능을 한다면 심각한 사회 분열이나 정치 혼란은 상당 부분 미리 막을 수 있다. 찬성과 반대 집단 두루 정당을 통하여 그 이익을 표출하고, 정당은 다시 그것들이 정책결정 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합법적인 정치권력을 행사할 것이다.

2004년 민주노동당의 국회 진출 이전까지 한국의 정당체계는 이념 및 정책적으로 별 차이가 없는 인물이나 지역 중심의 정당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이미 상당 정도의 다원주의 사회로 발전한 한국의 정치경제 현실에 부합하지 못하는 전근대적 정당체계였다는 것이다. 다종다양한 이익집단들이 존재함에도 정당체계는 그들의 이익을 수용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였다. 정당들은 사회세력들의 정책 선호나 이념 지향보다는 지역과 인물에 초점을 맞춘 전근대적 정치행위에 몰두해 있었다. 그렇다고 민노당의 제도권 진출이 한국 정당체계의 구조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민노당은 군소 정당에 불과하며, 현 선거제도가 유지되는 한 민노당과 같은 이념 혹은 정책 정당의 미래 의석이 증대될 것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한마디로 현상황에서의 이익집단 정치 역시 과거와 다를 바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정당을 통하지 않더라도 다른 채널이 잘 발달되어 있다면 문제는 상당히 줄 수 있다. 공청회나 청문회 등이 제도화하고, 거기서의 이견표출을 행정부 등 비정당 기구에서 잘 집약한다면 사실상의 의사소통 채널이 가동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이익집단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정책 통로는 대부분 바로 이 유형이다. 그러나 이러한 채널은 상당한 정치사회적 혹은 사회경제적 영향력이 있는 이익집단들만이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국의 재벌집단들이 비교적 최근까지 누려오던 막강한 정책 영향력은 바로 이러한 특권적 채널의 활용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노동이나 농민, 혹은 중소 상공인들과 같은 사회경제적 약자집단들이 이러한 채널을 이용하여 정책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는 매우 제한적이다. 이것은 얼마 전 파행으로 끝나버린 ‘한-미 자유무역협정 공청회’ 사례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결국 약자집단들이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이른바 ‘강압적 채널’뿐이다. 정당이나 공청회 또는 위원회 등을 통한 의사소통이 ‘합헌적 채널’의 활용이라 할 때, 시위·파업·폭동 등과 같이 물리적 힘 혹은 폭력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표출하는 행동은 강압적 채널의 이용에 해당된다. 사실 어느 나라에서나 합헌적 채널이 존재하지 않거나 별 소용이 없다고 여겨질 경우, 이익집단들은 강압적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추진 과정에서도 이런 문제는 그대로 나타났다. 마음은 급했고 손쓸 방법은 별로 없던 농민들은 거리로 나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이보다 훨씬 큰 사회적 불안 상태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농업뿐 아니라 대부분의 서비스업, 그리고 대대적인 구조조정 압력에 몰리게 될 상당수 제조산업과 해당 기업 및 노동자들의 반발이 엄청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혼란과 사회통합의 위기로까지 치달을 가능성도 부인하기 어렵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가장 효율적이고 궁극적인 방안은 정당의 제 기능을 회복시키는 일이다. 그런데 한국적 정치 현실에서 이념과 정책 중심의 정당 구조화 작업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선거제도의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지역주의와 연계되어 운영되고 있는 지금의 소선거구 일위대표제에서는 정책이나 이념 중심의 신생 정당이 부상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민노당의 제도권 진입도 비례대표제의 부분적 도입 덕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결국 한-미 자유무역협정 추진이 사회적 혼란 없이 순항하기 위해서는 더욱 효과적인 의사소통 채널이 제도화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우선 정치개혁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아직 시기상조다.

 

최태욱/한림국제대학원대학·국제정치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