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는 조선 왕조 전기에도 불렸을 것으로 짐작되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문헌이 없다. 지금까지 발견된 판소리 사설 자료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영조 30년인 1754년에 호가 ‘만화’인 유진한이 한시로 적은 만화본 <춘향가>이다. 이를 보더라도, 적어도 숙종 무렵에는 판소리가 틀을 잡게 되었을 것이다. 영조, 정조 때에는 우 춘대, 하 은담, 최 선달과 같은 명창들이 판소리 열두 마당을 불렀던 것 같은데, 그때의 판소리는 길이도 짧고, 사설이나 음악이 소박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순조 무렵에는 ‘여덟 명창 시대’ 라고 하여 권 삼득, 송 흥록, 모 흥갑, 염 계달, 고 수관, 김 제철(또는 김 계철), 신 만엽, 주 덕기, 박 유전과 같은 명창들이 나서 갖가지 장단과 조를 짜서 판소리의 음악 수준을 크게 발전시켰다. 권 삼득은 설렁제를, 모 홍갑은 강산제를, 염 계달과 고 수관은 경드름과 추천목을, 김 제철과 신 만엽은 석화제를 짜넣었고, 가왕이라고 불리던 송 흥록은 진양 장단과 우조, 계면조를 발전시켜 판소리를 예술의 경지에까지 끌어 올렸다고 전해진다.
판소리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전승되어 왔다. 전라북도에서 시작되어, 전라남도를 거쳐,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섬진강을 중심으로 하여, 그 동쪽의 운봉, 구례, 순창과 같은 곳에서는 동편제가 많이 불렸는데, 씩씩하고 웅장한 것이 특징이며, 송 흥록을 시조로 삼는다. 섬진강의 서쪽인 광주, 나주, 보성과 같은 곳에서는 서편제가 많이 불렸는데, 서편제의 특징은 정교하고 감칠맛이 있다는 것이다. 서편제 가운데 박유전제는 그 시조로 삼고 있는 박 유전의 호를 따서 ‘강산제’라고도 한다. 중고제는 책을 읽는 듯한 ‘송서제’와 비슷한 점이 많은 소리제로서, 소리의 높-낮이가 분명하다. 경기도와 충청도에서 많이 불렸는데, 염 계달, 김 성옥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판소리가 이와 같이 서너 가지 제로 나뉘어 발전된 것은 여덟 명창 시대에 시작된 일인데, 이것으로써 그때 명창들의 활동이 독보적이면서도 활발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철종 무렵은 이른바 ‘후기 여덟 명창 시대’로, 박 만순, 송 우룡, 김 세종, 정 춘풍, 장 자백, 이 날치, 정 창업, 김 정근, 한 송학과 같은 명창들이 나왔는데, 박 만순, 송 우룡, 김 세종, 장 자백은 동편제를, 이 날치, 정 창업은 서편제를, 김 정근, 한 송학은 중고제를 발전시켰다.
고종 무렵에는 박 기홍, 김 창환, 김 찬업, 송 만갑, 유 성준, 김 석창, 이 동백, 김 창룡, 김 채만, 정 정렬과 같은 명창들이 활약했는데, 이 가운데 김 창환, 송 만갑, 이 동백, 김 창룡, 정 정렬이 ‘다섯 명창’으로 꼽힌다. 이 다섯 명창의 뒤를 이어 장 판개, 김 정문, 공 창식, 박 중군, 임 방울, 김 연수, 이 화중선, 박 녹주와 같은 명창이 나왔으며, 지금은 김 여란, 정 광수, 박 동진, 박 초월, 김 소희, 박 봉술, 한 승호, 정 권진과 같은 명창들과, 고수에는 김 명환이 무형 문화재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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